(희망+)(기업강국)⑩`르네상스 흑기사`가 뜨다
by류의성 기자
2009.03.26 16:26:35
하이닉스, 혁신적 비용절감 돌입
절감 효과..유동성 확보 및 핵심사업에 집중 투자
2만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데일리 류의성기자] 작년 겨울 어느 날 저녁. 하이닉스 TF팀에게 긴급 소집령이 떨어졌다. TF팀장인 심영보 상무를 비롯한 팀원들은 `흑기사` `비타1000` `르네상스` `무한도전` `자린고비` 등 50여개의 단어들을 놓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회사에서, 그것도 긴급 소집된 회의에서 이런 단어들을 놓고 도대체 무슨 회의를 연 것일까.
당시 반도체 가격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D램시장 주력제품인 DDR2 1기가(128Mx8 667MHz) 고정거래가격은 작년 7월 2.37달러까지 올랐다가 12월 1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반도체 초과 공급 현상이 해소되지 않자 가격은 최저 기록을 깨뜨렸고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 공급이 수요에 1%만 초과해도 가격은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독일의 키몬다가 파산신청을 내는 등 국내외 반도체회사들의 수익성은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하이닉스는 경기 회복 이후를 기약하기 위해선 무조건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하이닉스가 먼저 눈을 돌린 것은 비용절감. 그것도 단순히 절감 아이템을 정해서 비용을 줄이는 기존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바꾼다는 각오의 비용혁신이 필요했다. 이에 전사적인 비용혁신 활동을 고민하고 전담할 조직이 필요했다. 이런 취지를 사내에 알리고 비용혁신 TF 명칭을 공모했다. 100여개가 넘는 명칭이 모여들었다. 이를 50여개로 추리고 다시 10개 후보군으로 압축했다.
`비타1000` (비용절감 타켓 1000억원), `타투1000`(Tato1000, turn aruond 투입비용절감 1000억원), 케이블TV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CSI에서 힌트를 얻은 `CS1000`(Cost Saving, 코스트 세이빙 1000억원)등이 주요 후보로 압축됐다.
그러나 공모 명칭 중에는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학문과 예술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 `르네상스`, 흑자전환 기반 구축 사수대를 뜻하는 `흑기사`라는 명칭이었다.
`르네상스 흑기사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심영보 하이닉스 르네상스TFT 상무는 "경기 상황과 반도체산업 시장을 전망할 때 향후 1~2년간은 극한의 비용 절감이 불황을 이기는 데 필수전략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비용혁신 TF의 명칭은 결국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된 르네상스로 낙점됐다.
심 상무는 "부흥과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라는 팀명에는 현재 진행 중인 비용절감 프로젝트가 위기의 상황에서 1회용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르네상스 TFT는 팹과 유틸리티 등 직접부문에서 9개의 TF, R&D와 영업 등 간접부문에서 5개, 중국 등 해외법인을 통털어 1개 TF로 구성돼 있다. 전사적으로 15개의 소그룹 TF가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비용혁신 활동 전체를 관할하는 30명의 상근 인원을 별도로 조직해 세부 소조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비용혁신 항목으로 무려 3500여건을 뽑아냈다. 이병택 르네상스TFT 차장은 "르네상스TF는 절감 아이템을 선정해서 거기에 얼마를 줄일까라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절감할 비용을 먼저 계획한 후에 조직이 함께 절감 아이템을 발굴하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생비용을 줄이는 데 집중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수입원이 될만한 아이템을 찾거나 노무 등 기타비용에까지 절감 아이템을 확보하는데 노력이 집중됐다.
이렇다 보니 르네상스 TFT의 규모는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전사적일 수 밖에 없게 됐다. 조직 전체가 르네상스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TFT는 이번 1분기까지 공정 혁신을 통한 국산화와 다변화를 확대하고 새로운 개념의 비용절감 활동 추진을 펼칠 계획이다. 생산라인과 개발인력들의 적극적인 아이디어 창출로 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의 비용 절감 아이템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예를 들어 칩과 외부단자를 연결해주는 와이어 사용량을 20% 절감하는 신공법을 발굴해 월 수억원의 원자재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웨이퍼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 웨이퍼도 재활용처리를 거쳐 월 수십억원의 추가 수입을 달성했다.
한성규 하이닉스 제조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품질과 고효율, 저비용에서 제3의 물결을 이끌어 내라. 행동방식과 사고, 태도 근본적으로 바꿔라. 문제 해결책을 다른 데서 찾지 말아라. 내부에 있다"
하이닉스 공장에 가보면 하이닉스 르네상스 TF의 분위기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한 각종 구호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직원들의 눈빛도 남다르다.
`버는 만큼만 쓴다`, `비용혁신의 역발상- 선택이 아닌 숙명`, `비용절감 무너지면 끝장`, `양보다 질` 라는 붉은 글씨의 구호를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어디인가라는 착각마저 든다.
김기두 하이닉스 과장은 "품질과 비용, 수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르네상스 바람이 불면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임직원들이 한방향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직원들 하나하나가 참 고마웠다"고 전했다.
하이닉스는 절감활동을 통해 얻어진 비용을 유동성 확보와 핵심사업 추진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술 우위와 원가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올해 매출의 10% 수준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작년에도 하이닉스는 매출의 10% 이상, 약 7000억원의 비용을 R&D에 투자했다. 이를 강화해 세계 최고의 기술 리더십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최근 하이닉스는 세계 최초의 44나노 DDR3 D램 제품()을 개발해 이를 입증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54나노보다 생산성이 약 50% 향상된 제품으로,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로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동작속도를 확보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하이닉스는 44나노 공정을 적용한 DDR3 제품의 양산을 올 3분기에 돌입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다양한 용량의 DDR3 제품을 대규모로 양산할 계획이다.
또 하이닉스는 올해 수익 경쟁력은 50나노급 제품을 안정화시킨 업체가 가져갈 것으로 보고, 안정적인 54나노 수율을 확보했다. 50나노급 제품은 삼성전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개발했고, 후발업체와는 1~2년 이상의 격차를 벌여왔다는 자체 판단이다.
낸드플래시에서는 41나노 낸드플래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또 저전력 및 고용량, 고품질의 모바일 제품 비중을 올해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P램, Z램, STT램 등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진행해 지속성장을 위한 미래기술을 확보할 전략이다.
심 상무는 "메모리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임직원들의 불안과 걱정이 컸지만 르네상스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의 불황도 극복하겠지만 향후 어떠한 시장 불황이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기술 R&D에도 집중 투자해 하이닉스가 업계 부동의 수위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