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샛별' 박수연 "이순재 또렷한 눈 보면 정신 번쩍…전 행운아죠"

by김현식 기자
2024.10.04 12:12:12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캐스팅
무대 조감독 로라 역 맡아 극에 활력 더해
3년차 신예…"브로드웨이·할리우드 진출 꿈 꿔"

박수연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배우 박수연(23)이 새로운 대학로 샛별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월 7일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개막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박수연이 빛을 뿜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공연 제작을 맡은 파크컴퍼니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박수연은 이번 연극을 “연기자의 길에 대한 확신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소중한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수연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통해 아흔을 앞둔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와 한 무대에서 연기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박수연은 “TV로만 보던 분이 저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고,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확 달라지는 또렷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게 아직도 얼떨떨하다. 종종 그 눈빛을 볼 때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박수연은 “‘무대가 체질’이신 선생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아흔 살까지 무대에 머무르는 배우가 되겠다는 소망도 생겼다”고도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사진=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고전 명작인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해 만든 작품이다. 각각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역 대역 배우인 에스터와 밸이 공연장 지하 분장실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를 출연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다. 이순재와 곽동연이 에스터 역을, 카이, 박정복, 민호(샤이니)가 밸 역을 소화 중이다.

박수연은 정재원과 함께 무대 조감독 로라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콜 오디션을 거쳐 작품 출연 기회를 잡았다. 인터뷰에 동석한 파크컴퍼니 관계자는 “강단 있고 똑 부러지는 면모가 인상적이었다”고 오디션 순간을 돌아봤다. 박수연은 “로라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며 관객을 설득할 것인가 자문해보며 오디션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출연 확정 소식을 접했을 땐 너무 놀라서 ‘어버버’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공연용 구두를 찾기 위해 분장실을 찾는 로라는 에스터와 벨에게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보다 무대 조감독이 큐사인을 주며 공연을 이끄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당찬 캐릭터다. 예술과 인생에 대한 끝모를 대화를 이어가는 에스터와 벨 앞에 불쑥 등장해 극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난여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장에서 무대 조감독 체험을 해보며 작품을 준비한 박수연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사회초년생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작품의 현실성과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사진=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캐릭터 프로필
박수연은 “로라는 흔히 ‘Z세대’라고 표현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실제 제 모습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며 “능동적인 태도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충실히, 당차게 해내는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틀에 갇히지 않은 채 선배 배우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캐릭터를 섬세하게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도움이 많이 됐다”며 “덕분에 한층 더 로라 역에 몰입한 채로 무대를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연은 계원예고를 거쳐 중앙대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2022년 연극 ‘에쿠우스’에서 질 메이슨 역을 맡아 데뷔했고 지난해에는 연극 ‘배이’에서 로봇W 역으로 관객과 만났다. 오는 12월 1일까지 공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3번째 정식 출연작. 데뷔 2년여 만에 쟁쟁한 이름값을 자랑하는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예고에 진학한 뒤 점차 진중한 자세로 연기를 대하며 알맹이를 채우려고 노력해왔다”는 박수연은 에스터와 밸을 보며 무대를 대하는 간절한 마음과 태도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있기도 하다. 박수연은 “관객분들도 일상 속에서 염원하는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사진=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계기로 쉽게 채워지지 않았던 자신감과 연기 만족도 또한 충만해졌단다. 박수연은 “작품 출연 전 연기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느껴져 태어나서 처음으로 찾은 연기아카데미에서 만난 배우 김시은 선생님께 ‘연기는 무대에서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라는 조언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며 “적기에 만난 이번 작품을 통해 그 조언을 적용한 연기를 펼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박수연은 아직 소속사가 없다. 공백기 때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오디션 기회를 얻고 있다는 박수연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진출을 모두 해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해외 진출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시기에 연기를 시작한 걸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며 “강점인 지구력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