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적법성 심리 개시
by방성훈 기자
2024.02.20 13:52:13
2022년 유엔 결의 따른 심리…전쟁 도중 진행해 주목
남아공 제기한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소송과 별개
구속력 없지만 위법 판결시 국제 비난 피하기 어려워
팔 외무 "팔 주민들 이주, 예속, 죽음 중 택일 직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이 지난 56년 동안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해온 것이 적법한지와 관련해 심리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넉 달째 지속되는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서안지구에 위치한 유대인 정착촌.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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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날 이스라엘이 1967년부터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해온 것에 대해 적법성 여부를 가리는 심리를 개시했다. 심리는 이날부터 6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심리는 유엔이 2022년 12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적법한지 국제사법재판소에 조언을 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후속 절차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 도중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대량 학살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기한 소송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이후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군사 통치를 해왔다. 동예루살렘을 서예루살렘에 병합해 수도로 삼기도 했다. 현재 하마스와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는 2005년 군대를 철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을 봉쇄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안보 보호를 위해선 점령이 필수적이었다는 입장이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졸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무력 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유엔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적법성 관련 조언을 구하게 된 배경이다.
서안지구 정착촌은 이스라엘 군대가 보호하며 요새화돼 있으며, 약 75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정착촌 때문에 서안지구에서 이주, 예속,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이날 심리에서 밝혔다. 그는 “국제법에 부합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심리에 나서지 않을 계획이다. 심리 결과는 수개월 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FT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되고 국가 위상도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이 민간인 대량 학살 등으로 이미 큰 비난과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여론이 더욱 비우호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