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손해" "기회왔다"..엔화 초강세 업계 희비

by김상욱 기자
2009.02.20 17:25:10

日 수입차 업체 `전전긍긍`..외국계 IT기업, 가격인상 여부 `고민`
삼성·LG 등 "엔화환율 영향 미미"..수출경쟁력 제고
현대·기아차, 해외시장 확대 도움 전망

[이데일리 산업1부] 엔-원 환율이 20일 사상 최고치까지 급등하면서 국내외 업체들의 향후 수익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 철강 등 국내 수출업체들의 경우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혼재하는만큼 아직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국시장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전자·자동차 업체들의 경우 엔화환율 급등에 따른 충격에 상당부분 노출된 상황이다. 엔화 환율 급등으로 `물건을 팔면 오히려 손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엔화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해 1만2000여대를 판매하며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던 혼다코리아도 아직 올해 판매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지금은 엔화상승으로 차를 팔면 오히려 이익이 아닌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며 "차를 팔면 적자가 누적되는데 판매매수 예측은 무의미하다"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혼다는 판매부진과 엔고의 부담으로 지난달 22일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종의 가격을 3%가량 인상하기도 했다.
 
닛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판매부진과 엔고의 이중고를 겪으면서 아직 올해 판매목표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닛산 관계자는 "신흥고객을 늘이기 보다는 기존 목표고객 중심의 마케팅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엔화가 아니라 원화로 결제를 하기 때문에 체감하는 어려움은 조금 덜하다는 입장이다.
 
토요타 자동차의 관계자는 "한국 지사의 경우 원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차손을 일본 본사가 다 커버해 주는 형태"라며 "다만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국 지사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 진출한 IT기업들이나 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 역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환율 상승을 감안할 경우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최근 소비까지 침체되고 있어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일본 IT기업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 고민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1월 들어 일부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환율 상승분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때문에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가격까지 올릴 경우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있다"며 "힘들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다른 외국계 IT기업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환율 상승분을 반영해 그때그때 가격을 올리면 시장 자체에 혼란이 올 수도 있고 고객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며 "본사와 수시로 가격을 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품을 수입하는 PC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부품 가격 상승으로 제품 자체의 가격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노트북업체 관계자는 "당초 1000원대 초반에 맞춰 부품계약을 체결했는데 환율 상승으로 당초 예정했던 출시가격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반면 대표적인 국내 전자업체인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의 경우 엔화 환율 급등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단기적으로 일본으로부터의 구매비용이 상승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 기업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액과 수출액이 큰 차이가 없어 효과를 추정하기 어렵다"라며 "최근 환율의 변동성이 심해지고 있어 환율 변화가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지 추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LG전자의 연간 일본 수출입 규모는 각각 2억달러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헤지가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LG전자의 경우 수출입중 엔화 결제비중도 1~2% 수준에 그치고 있어 엔화 환율 상승이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일본기업들이 부진한 실적을 거둔 요인중 하나가 엔화 강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시장에서의 한·일 전자업체간 가격경쟁력 차이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 역시 이번 환율 상승이 수출 측면에서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특히 내수판매보다 수출비중이 높은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자동차(000270)는 미국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업계 전문가들도 현대·기아차에 우호적인 환율 여건이 만들어지면서 마케팅 여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상승 지속으로 현대차, 기아차가 미국 딜러들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 여력이 일본업체들보다 확대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시장 인센티브는 전년대비 각각 22.3%, 10.1%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이른바 `일본 빅3`는 5.4%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원화가 달러대비 약세를 보인 반면 엔화는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다만 우호적인 환율이 수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내수시장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매력이 떨어져 내수침체가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