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이후락 "안 온다 생각했지?" 北김영주 "마주 앉으니 절반 성공"
by권오석 기자
2023.07.06 14:20:27
통일부 7·4 남북공동성명 협의 과정 등 남북회담문서 공개
[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간 공식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하기에 앞서 △남북 접촉·대화의 실상 △통일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 등이 담긴 사료가 공개됐다.
| 위는 1972년 5월 31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는 모습. 아래는 1972년 5월 3일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왼쪽)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수상과 악수하는 모습. (사진=통일부) |
|
통일부는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1678쪽 분량)을 국민에게 공개한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공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공개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에는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1971년 11월~1972년 6월) △7·4 남북공동성명 발표(1972년 7월)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3차례, 1972년 10~11월) △남북조절위원회 회의(3차례, 1972년 11월~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의(10차례, 1973년 12월~1975년 3월) 관련 진행과정과 회의록 등이 포함돼 있다.
문서에 따르면,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실무자와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교환 방문이 숨 가쁘게 이뤄졌다. 1972년 3월 정홍진 회담운영부장이 평양을, 다음 달엔 김덕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지도원이 서울을 각각 방문했다.
그해 5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했다. 문서에는 두 사람의 구체적인 대화도 실렸다. 그해 5월 2일 평양에서의 1차 회담에서 이후락 부장은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안 오리라 생각했지요?”라고 하자 김덕현 부장은 “아닙니다. 나는 오리라 생각했습니다”고 답했다. 김 부장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우리가 마주 앉으니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자 이 부장은 “성공을 꼭 해야죠”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그 달 29일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에서 이후락 부장과 면담했다. 이러한 ‘막전막후’의 물밑 협상 끝에, 분단 후 첫 남북 당국 간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침용 땅굴 발견 사건을 비롯해 남측 경찰 경비정 포격 격침 사건 등 갈등이 일어나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됐고 남북조절위원회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공개된 남북회담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 내에 마련된 ‘남북회담문서 열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북회담문서 공개 목록 및 공개 방법, 열람 절차 등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