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홍남기가 비트코인을 암호화폐 아닌 가상자산이라고 부르는 이유

by이명철 기자
2021.04.29 11:00:10

홍남기 “정부, 가상자산 써…국제사회도 Virtual Asset”
국제회계기준서 자산 정의, 韓회계기준원 “금융자산 아냐”
디지털화폐 준비하는 중앙은행도 선 긋기…과세 논의는 별개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코인 투자’ 열기에 암호화폐(가상자산)의 정체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가상자산(virtual Asset)일 뿐 화폐(Currency)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은 비트코디지인 등 디지털 자산도 금융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제도권 편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폐 또는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을 경우 가격 상승 뿐 아니라 정부의 투자자 보호까지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가상자산이라고 선을 그으며 투자에 유의할 것을 신신당부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암호화폐를 어떤 형태로 규정할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금융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도 아니고 원화나 달러처럼 화폐의 기본 조건도 갖추지 않은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현금을 들여 구입해야 하고 광범위한 플랫폼에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통상 게임에서 사용하는 사이버머니와도 구별된다.

비트코인 열기가 불기 시작하면서 암호화폐 회계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은 커졌다. 개인 뿐 아니라 기업까지 투자에 나서면서 회계 장부상 가치를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돼서야 암호화폐에 대한 국제적인 회계기준이 마련됐다. 국제회계기준해석위원회(IFRS IC)는 가상통화(암호화폐)가 무형자산 정의를 충족하며 기업이 통상 영업활동에서 판매 목적으로 보유했다면 재고자산, 그 외는 무형자산으로 분류한다는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IFRS는 무형자산을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식별 가능한 비화폐성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비트코인 등의 경제적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회계 기준에서는 앞으로 해당 자산을 통해 이익 기대치가 손해 가능성보다 높다면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무형자산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예전 회계기준에서는 공장이나 기계 등 눈에 보이는 자산만을 인정했지만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연구개발(R&D) 성과나 지식재산권(IP) 등 무형의 자산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역시 이러한 추세에 맞춰 무형자산으로 분류했다.

IFRS를 따르는 국내 회계기준에서도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보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2019년 가상통화를 어떤 자산으로 분류하는지에 대한 질의회신에서 “영업과정에서 판매목적으로 보유한다면 재고자산, 그렇지 않다면 무형자산으로 분류한다”고 답했다.

답변에서 가상통화는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비화폐성 자산으로 미래 경제 효익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무형자산 정의를 충족한다고 봤다.

다만 △현재 일반적인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가치 변도 위험이 크며 △거래 상대방에게서 현금 등 금융자산을 수취할 계약상 권리에 해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현금·현금성자산·금융자산 정의를 충족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기업이 일종의 자산으로서 비트코인 등을 보유할 순 있지만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는 화폐나 금융자산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트코인 모형 모습. 비트코인은 전자장부에 데이터 형태로 저장된 자산으로 실체는 없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도 암호화폐·가상통화 등 화폐의 의미보다는 가상자산으로 명칭을 통일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018년 10월 열린 총회에서 암호화폐(Crypto Currency) 용어를 가상자산(Virtual asset)으로 정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도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G20에서도 여러 가지 용어에 대해 검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암호화폐를 쓰다가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로 통일했다”고 전했다.

각국 정부들이 비트코인 등에 대해 화폐라는 용어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달러 같은 법정통화와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홍 부총리는 “용어가 암호화폐, 그러니까 화폐를 대체하는 것으로 인식이 가서 혹시 미스 언더스탠딩(오해)이 될까봐 말한다”며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 무형(자산)이지만 시장에서는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보면 되겠다”고 설명했다.

전세계에서 비트코인 등에 대한 투자와 발행이 잇따르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체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화 추세와 맞물려 제도권 안에서 화폐의 디지털화를 검토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장쑤성 쑤저우시가 다음달 열리는 쇼핑 축제에서 위챗 계정을 통해 중국 법정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완화를 나눠주는 소비 촉진 행사를 열어 시험 사용에 나설 예정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처음 정식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을 준비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 등도 디지털화폐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거나 기술 실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도 최근 내놓은 ‘2020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가상환경에서 디지털화폐 모의실험을 통해 제조·발행·유통·환수·폐기 등 생애주기별 처리 업무와 송금·대금결제 등 서비스 기능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은은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에 대해 대부분 정부·중앙은행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특정금융정보법에서도 가상자산으로 분류했다며 ‘자산’으로 분류됨을 명확히 했다.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에 대해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가상자산이 화폐인지 자산인지 여부는 별개 논의 대상이라는 판단이다.

홍 부총리는 가상자산을 미술품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미술품을 거래해 이득이 나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다”며 “가상자산을 거래하면서 생긴 소득에 대해 과세가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을 화폐나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가상자산은 화폐의 3대 조건인 가치의 저장, 가치의 척도, 교환의 매개 기능을 충족하지 못해 화폐로 규정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비트코인 등을 통화로 삼거나 이에 대한 파생상품이 생긴다면 이에 대한 정의와 회계기준도 변경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회계정보학회장)는 “현재 비트코인은 경제적 가치가 있지만 일반 화폐처럼 경제적 가치를 바꾸는 등가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화폐화는 어렵다”면서도 “금은 예전에 화폐로 분류하다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등 변화로 지금은 자산으로 보는 것처럼 향후에는 비트코인에 대한 회계기준 역시 바뀔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