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무산된 뉴타운, 초고령 ‘동대문 아파트’는 어떻게…
by박종오 기자
2013.06.17 15:23:07
뉴타운지구 해제로 보존계획 '백지화'
개별 보수·재건축도 어려워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17일 오전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328-17번지 일대.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 인근 고층빌딩들 사이로 1428㎡ 부지에 6층짜리 낡은 아파트 한 동이 서 있다. 외관이 먼지로 부옇게 바랜 건물 안에 들어서자 길 따란 아파트 복도로 햇살이 쏟아진다. 위가 탁 트인 마당을 중심으로 양편에 전용면적 28.8㎡의 소형주택 131가구가 마주한 이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국내 최초의 중정(中庭)형 아파트인 ‘동대문 아파트’다.
지은 지 48년 된 이 도심 속 명물 아파트는 최근 노후한 모습 그대로 방치될 위기에 놓였다. 건축·문화적 가치가 커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유지·보수 전망이 불투명해져서다.
1965년 준공돼 과거 연기자 백일섭, 가수 박건, 고(古) 계수남 씨 등이 거주해 연예인 아파트로도 입소문을 탔던 단지는 과거 서울시가 그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 대상으로 꼽고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0년 창신·숭인 뉴타운 재정비촉진계획안을 발표하며 구역 안에 위치한 이 아파트를 철거 대신 시 재정으로 매입해 문화 창작 및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던 것.
하지만 예산 문제로 사실상 답보 상태였던 동대문 아파트 보존계획은 추진 3년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최근 서울시가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창신·숭인 뉴타운을 통째로 해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재정비과 관계자는 “이 사업은 뉴타운 촉진계획의 일부였기 때문에 뉴타운 지구가 해제되면 함께 취소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뉴타운 사업과 별개의 보존 방안이 추진되다 무산됐다. 보존가치가 높은 서울시내 근현대 문화유산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파트 매입비 등 보존에 따른 시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민간 차원의 자체 유지·보수도 기대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 관리인인 정연환(74)씨는 “과거에는 입주민 대부분이 실거주자여서 집수리에 적극적이었지만 지난 20여 년간 여러 차례 손바뀜 되며 지금은 월세 세입자만 거주해 시설 보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이 취소되면 동대문 아파트는 보존 대신 전면 재건축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주민 대립과 사업성 논란 등으로 추진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현지 주민과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동대문맥공인(창신동)의 최신기 실장은 “아파트가 땅값이 비싼 상업지역에 위치했지만 부지가 작고 주변 상가도 미분양이 많은 만큼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아 재건축을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존 계획이 발표된 뒤 한때 보상금과 새 아파트 입주권 등을 노린 투자수요로 치솟았던 동대문 아파트 집값도 최근 방치 우려가 커지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재정비촉진계획 발표 뒤 호가가 3억원까지 치솟았던 이 아파트는 현재 매매가가 1억800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당장은 매입 계획이 없지만 향후 이 지역에서 개별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 등이 추진되면 그때 보존 방안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