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좋다는데 물가 상승 '28개월만에 최저’…왜?(종합)
by박종오 기자
2017.05.02 11:03:31
| △소비자들이 지난해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서 열린 한 할인 행사에서 신발, 가방 등 진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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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경기가 살아나면 물가는 오른다. 생산·투자 증가가 일자리 증가와 임금 상승, 가계 소득 및 소비자 구매력 확대로 이어져 물건을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경제 지표는 이런 일반적인 상식과 엇갈리고 있다. 경기가 살아난다는데, 정작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은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라앉아서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지수 중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1.5% 오르는 데 그쳤다. 상승률이 한 달 전보다 0.2%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상승 폭은 2014년 12월(1.4%) 이후 28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일시적으로 가격 변동이 심한 품목을 조사에서 제외해 물가의 장기적이고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공급 측 가격 변동 요인을 제거하고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반영해 ‘근원물가(core inflation)’라고 부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각국의 물가 상황을 비교할 때 이 지표를 사용한다. 물가 안정이 목표인 중앙은행 역시 근원물가를 참고해 통화 정책을 결정한다.
문제는 최근 근원물가가 경기와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은 지난달 말 ‘산업활동동향’을 펴내며 “경기 상승 흐름이 완연하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 “생산·투자·소비 등 국내 산업 활동 지표 대부분이 증가세를 이어가거나 반등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지난 3월 국내 전체 산업 생산량은 한 달 전보다 1.2% 늘며 반등했다. 수출 6개월 연속 증가세에 힘입은 것이다. 증가 폭도 작년 11월(1.4%) 이후 가장 컸다.
국내 설비 투자도 12.9% 늘었다. 이는 2013년 10월(14.9%) 이후 41개월 만에 최대 증가율이다. 3월 소비는 전달과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통계청은 중국 보따리상의 사재기로 지난 2월 국내 소비가 반짝 급증했던 만큼 3월 소비도 ‘선방’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경기 전반에 봄바람이 분다는 데 근원물가는 왜 반대로 하락했을까?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2015년 3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 때문에 참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1.5%)은 최 전 부총리가 이런 발언을 했던 때(2.4%)보다 무려 0.9%포인트나 낮았다. 지금이 그때보다 물가 하락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통계청이 꼽는 근원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은 ‘봄맞이 할인 행사’다.
우영제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지난달 대형마트와 백화점, 로드 매장, 전통시장 등에서 구두, 바디워시, 샴푸 등 공업 제품 가격을 많이 할인해서 판매했다”며 “이런 세일 때문에 근원물가가 일시적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 요인을 거르고 보면 수요 부진이 심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은은 경기 동향과 물가 간 ‘시차’에 주목한다.
한은 관계자는 “생산·투자 등 경기 지표 변동이 물가에 반영되는 시차는 통상 2~3분기(6~9개월) 정도”라며 “최근 경기 개선에 따라 미약했던 수요 압력도 시차를 두고 조금씩 회복될 거로 본다”고 했다. 근원물가 오름세가 지금 당장은 주춤하지만, 올해 하반기로 접어들며 뚜렷해지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은은 올 하반기 근원물가가 1.7% 오르며 상반기(1.6%)보다 상승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이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반도체,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만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며 일자리 등 내수 전반으로 좀처럼 온기가 확산하지 않아서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글로벌 리플레이션 현상 진단’ 보고서도 그 한 예다.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나라 물가 상승은 수요 회복보다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이 크다”면서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압력이 높지 않아 선진국 대비 낮은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과거 일본과 같은 디플레 발생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