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인사]실적이 거취 갈랐다…삼성전자 '빅3' 유임 의미는?

by이재호 기자
2014.12.01 11:38:38

사장 승진 및 대표이사 교체 철저한 '신상필벌'
오너 일가 승진 없어, 후계구도 재편 일부 반영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이재용 체제가 구축된 뒤 처음 실시한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파격은 없었다.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던 신종균 삼성전자(005930) IT·모바일(IM)부문 사장을 비롯해 권오현 부품(DS)부문 부회장과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등 이른바 ‘빅(Big)3’는 유임됐다. 오너 일가 중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머지 계열사 및 사업부의 경우 실적에 따른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이 확실히 적용됐다. 이건희 회장이 6개월 넘게 와병 중인 상황에서 조직 전체를 뒤흔들 만한 인사는 자제했지만 그동안 그룹 인사의 기본 원칙으로 작용했던 성과주의는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은 1일 정기 사장단 인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룹 전체 실적을 좌우하고 있는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폰 사업의 실적 부진으로 경영 일선 후퇴 논란이 일었던 신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IM부문과 CE부문을 합치는 방식의 조직개편 방안도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전무)은 “신 사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모바일 시장 1위로 올라서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우수한 성과를 낸 조직의 리더는 승진으로 보상받았다.

TV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의 김현석 부사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인 전영현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신임 사장은 삼성전자의 9년 연속 TV 시장 1위 달성을 이끌었으며, 커브드 TV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는데 기여했다.

전 신임 사장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1위를 공고히 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전체적인 실적 악화 속에서도 메모리 사업이 선전하면서 무게중심을 잡아준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실적이 부진했던 계열사와 사업부는 수장 교체라는 홍역을 치렀다.



신 사장과 함께 스마트폰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이돈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홍원표 미디어솔루션센터장(사장)이 글로벌마케팅전략실장으로 옮기면서 해당 업무를 맡게 됐다.

부품 계열사 중 삼성전기(009150)의 최치준 사장도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며, 이윤태 삼성디스플레이 LCD개발실장(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최 사장 후임으로 선임됐다.

이 신임 사장은 반도체와 LCD 기술 전문가로 커브드 패널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가 사물인터넷(IoT)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상진 삼성SDI(006400) 에너지솔루션부문 사장은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으로 옮겼다. 기존에 대외업무를 담당하던 강호문 부회장은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복수 대표이사 체제에서 조남성 사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에너지솔루션부문과 소재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조직도 통합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던 삼성증권(016360)과 삼성BP화학의 대표이사는 각각 윤용암 삼성자산운용 사장과 상영조 삼성물산 부사장으로 교체됐다.

이준 팀장은 “이번 사장단 인사 특징은 경영실적에 따른 철저한 성과주의 인사원칙을 유지했다는 점”이라며 “경영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재도약을 주도할 인물로 경영진을 쇄신했으며 변화를 선도하고 지속 성장 기반을 구축할 참신한 인물도 중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삼성은 이날 인사를 통해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028050) 경영기획총괄 사장이 제일기획(030000)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으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의 남편이자 이 회장의 둘째 사위다. 이번 업무 변경은 김 사장의 커리어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과 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은 스포츠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해외 일정을 소화할 때도 동행하며 보좌하기도 했다. 제일기획 산하에는 남·녀 프로 농구단과 프로 축구단 등 3개팀이 있다. 김 사장은 이들 프로팀 관련 업무와 스포츠 마케팅 업무 등을 총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사장의 이동은 삼성 후계구도 재편 작업과도 연관이 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총괄하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각각 호텔·상사와 패션·미디어를 맡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김 사장이 제일기획으로 이동하면서 부부 경영체제가 구축됐으며 사장 수도 임대기 대표이사를 포함해 3명으로 늘었다.

한 재계 인사는 “김 사장이 제일기획으로 소속을 옮긴 것은 오너 일가의 계열사 분배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부진 사장의 남편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의 경우 최근 이혼을 하면서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 홍원표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전략실 사장, 조남성 삼성SDI 사장,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 상영조 삼성BP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