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인터뷰]"와인은 마시는 술 아니라 배우는 술"
by문정태 기자
2012.07.18 14:36:17
[이데일리 문정태 기자] “와인을 배우면 인생이 바뀝니다. 미술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듯이 와인도 제대로 공부하면 할수록 즐거움이 배가되지요. 알면 알수록 그 즐거움은 더욱 더 커집니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은 한국 와인사(史)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농장주가 되는 게 꿈이었던 김 회장은 대학에서 농화학을, 대학원에서는 식품학을 전공했다. 이때 와인과 위스키는 물론 전통주 만드는 법까지 배웠고, 동아제약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주계(酒界)에 입문했다.
“1986년에 동아제약이 마침 국산 와인 제조사인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를 인수했습니다. 충남 당진에 사과밭이, 보령에 포도밭이 있었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농장에서 과일도 재배하면서 와인도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김 회장에게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의 지원 아래 1년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와인 양조학(Enology)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 이후 수 년 동안 그는 수석농산에서 와인메이커로 국산 와인 생산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은 다가왔다. 80년대 말부터 외국 와인의 수입이 허용되면서 국산 와인의 설자리가 줄어든 것.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회사에서 와인 생산을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져습니다. 난감했죠.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수천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의 와인을 감당하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너무도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한계를 느꼈던 김 회장은 몇 년 동안 다른 일을 했다(이 부분에 대해서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다 다시 와인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새운 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 한국에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 방향은 바꿨다. ‘사람들이 보다 제대로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보자.’
우리나라도 여러 와인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와인지식을 제공하는 곳도 많아졌다. 하지만, 자사 제품의 홍보를 목적으로 교육하면서 정확한 와인지식보다는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와인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을 미신 대하듯이 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주관적인 느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외국인 초청강의, 외국의 학원 명의를 사용하면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실은 기하지 못한 사례도 많습니다.”
2000년 서울와인아카데미를 시작으로, 한국와인아카데미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철준 와인스쿨에 이르기까지 김 회장이 가르친 학생들은 줄잡아 2000명에 이른다. 서울의 어지간한 호텔, 레스토랑, 백화점, 와인숍 등에는 제자가 다 있을 정도.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소믈리에’ 교육뿐만 아니다. 와인의 역사와 함께 직접 와인을 만드는 ‘양조학’도 가르친다. 그런 그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라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라는 것이다.
“따라주는 와인을 받을 때 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잔을 들 때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신경 쓰는 게 마치 와인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정작 자신이 마시고 있는 와인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지는 전혀 몰라요. 와인의 역사를 알고 상대방과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식을 갖추는 게 진짜 매너예요.”
2006년에 설립된 한국와인협회에서는 그간 부회장으로 일을 해오다 올 초부터 회장직을 맡게 됐다. 회장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단 하나. ‘와인을 대중화시키자.’다. 최근 이슈가 된 와인의 인터넷 판매는 이런 맥락에서 찬성하기로 협회의 방향을 정했다.
“협회와 공정거래위원회와 의견을 자주 나눠왔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와인 대중화를 위해 (인터넷판매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인터넷판매가 되고 있어요. 와인은 제조 단계에서부터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탈세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약력: 1952년생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식품공학과 졸업. 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Fresno) 와인 양조학(Enology)과 수료, 동아제약 효소과 및 연구소 근무, 수석농산 와인메이커, 서울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아카데미 원장, (현)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와인생산협회 부회장.
*저서: 국제화시대의 양주상식(1994, 노문사), 와인과 건강(2001, 유림문화사), 와인(2003, 백산출판사), 와인 핸드북(2003, 백산출판사), 양주이야기(2004, 살림출판사), 웰빙와인상식50(2004, 그랑뱅코리아), 와인의 발견(2005, 명상), 와인, 어떻게 즐길까(2006, 살림출판사), 와인양조학(2009, 백산출판사),
*논문:발효 동안 Phenol류 증진을 위한 적포도 MBA의 처리방법, 한국 전통 장류의 문헌적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