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미 증시 "물구나무" 설까?

by강종구 기자
2002.10.14 17:34:55

[edaily 강종구기자] 전세계 주식시장이 방향을 가늠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돌변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바닥이다, 아니다, 반등한다, 더 떨어진다 견해가 엇갈려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시장을 겪고 있는 터라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반등에 성공한 미국 증시 안팎의 변화를 국제부 강종구 기자가 짚어봅니다.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가 오랜만에 시원스레 오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무려 4.55% 상승하며 610선을 회복했죠. 지난 2월14일 이후 최대 상승폭이라고 합니다.

이날 주가상승을 이끈 최대 호재는 역시 이틀간에 걸친 미국 증시의 랠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동안 우리 증시가 미국 증시에 따라 울고 웃기를 반복해 왔던 그대로지요.

미국 증시는 지난 주 마지막 이틀간의 랠리에 힘입어 주간단위로 6주간의 지루한 하락세를 끝내고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다우지수는 이틀동안 7.7%, 나스닥지수는 8.6% 급등했지요.

뉴욕 증시가 급등하기는 했지만 미국 투자자들이나 국내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아직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고의 돌발 악재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가능성과 그로 인한 경제와 증시의 충격이겠죠.

사실 이것만을 놓고 보면 지난 주 미 증시의 급등세에 흥분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보입니다. 미국은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주변 환경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력 축출을 외치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원과 하원은 대통령에게 무력사용권을 주기로 지난 주 결의했죠. 그리고 하루만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해 9.11테러를 연상시키는 대형 폭탄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외국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나이트클럽에서였죠.

테러의 배후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알 카에다와 관련있는 동남아시아 이슬람단체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대외변수에 대한 관심만큼 미국 증시 내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상조짐(?)에도 눈길을 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이틀간의 급등세를 차치하고라도 미국 증시의 상승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징후들이 속속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2000년 이후의 미국 증시 하락장이 끝났는지, 아니면 조만간 끝날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무턱대고 비관론에만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전체적인 시장 흐름을 주시하며 시각의 균형이 필요한 때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90년대말 미국 증시의 활황 당시와는 정 반대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90년대말~2000년초 미국 증시에서는 신용매수가 극에 달했었지요. 증권사에서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주가가 2000년초 이후 하락을 지속하자 이제나 저제나 반등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신용을 갚기 위해서였죠. 그로 인해 주가는 급락을 넘어 폭락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공매도(Short-Selling)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았다가 주가가 내려가면 사서 정리하는 전략이지요. 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이익이지만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돼 있습니다.

미국 증시 전문가들은 공매도 급증을 지난 2000년초의 신용매수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신용매수가 주가폭락을 부른 것처럼 공매도 급증이 반대로 주가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는 증시격언과 같은 논리입니다. 물론 이 정도 상황까지 가기 위해서는 주가가 일정수준이상 지속적으로 올라줘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애스펜그로브캐피털매니저먼트라는 펀드운용회사에서 공매도 추이를 조사하고 있는 더글라스 레이번이라는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공매도 투자자들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며 "과도한 낙관이 증시 침체로 나타난 것처럼 과도한 비관이 깜짝 랠리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레이번은 "과도한 공매도는 주가가 상승반전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며 "공매도 때문에 다우지수가 1000포인트를 찍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6년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증시활황을 빗대 "비이성적인 풍요"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마디로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비이성적인 우울(irrational gloom)"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주가가 너무 낮다는 거지요. 주가의 공정가치를 논하기 좋아하는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아직도 역사적인 평균치를 크게 웃돈다며 "바닥이 아직 멀었다"고 외치고 있지만 요즘에는 그런 말이 너무 흔해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 듯 합니다.

반대로 채권시장이 고점에 가까웠다는 경고성 기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채권펀드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핌코그룹의 빌 그로스 회장조차 미국 국채가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지요.

또한 2000년초 주식뮤추얼펀드가 사상 최대규모의 자금몰이를 했던 것처럼 올해는 채권뮤추얼펀드들이 시중자금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주식뮤추얼펀드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는 자산총액 순위가 3위로 밀려났고 핌코의 채권뮤추얼펀드인 토탈리턴펀드가 1위에 등극했지요. 그런데 개인투자가들이 주요 고객인 뮤추얼펀드와는 달리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주식과 채권의 자산배분에서 최근 주식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하는군요. 2000년초 발빠른 프로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일찌감치 발을 뺏던 것과 말이죠.

미국 증시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VIX는 지난 10일 50.48을 기록, 50선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VIX값이 50을 넘어가면 추세반전이 임박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지난 7월 주가가 바닥을 찍고 반등할 당시에도 VIX는 50을 넘었었죠.

물론 아직은 미 증시에 대한 비관론이 낙관론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가가 단기적으로 반등에 성공한다고 해도 불안심리가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초 상황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현 미국 증시의 초상화를 한번 쯤 음미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