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들의 '은밀한 집테크'
by김미영 기자
2020.08.24 11:01:00
20억~30억대 아파트 청약경쟁률 수백대 1
주담대 전면금지인데, 누가 사나 봤더니
'고가주택 갈아타기' 하는 1주택자들이었다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1동에 사는 50대 초반 자영업자인 A씨는 최근 분양한 강남구 대치동 ‘대치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 청약을 넣었다. 당첨만 되면 본인 명의인 반포동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로 갈아탈 요량이다.
A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 가격은 오를 만큼 올랐고, 새 아파트는 분양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당첨만되면 앉아서 수억원은 번다”며 “현정부가 기존 주택 집값은 30~40% 올려놓고, 새 아파트 분양가격은 20~30% 낮기 놨기 때문에 나 같은 1주택자들이 재테크 하기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 시중유동자금의 부동산시장 유입 차단에 나섰지만, 20억~30억원대 새 아파트 청약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달하는 등 과열현상이 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를 ‘투기세력 때문’이라며 칼을 갈고 있지만, 사실상 고가주택 청약시장을 주무르는 것은 ‘집테크’에 나선 1주택자들이란 분석이다.
| 한국무역협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이데일리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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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1주택자라 해도 추첨방식인 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는 ‘처분서약’만 하면 청약 기회가 주어진다. 분양가 규제에 따른 웃돈 기대감에 유주택자들까지 청약시장에 뛰어들면서 청약률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12일 청약을 진행한 ‘대치 푸르지오 써밋’은 3.3㎡당 평균 4750만원에 106가구를 일반분양했다. 모든 타입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이 안되지만, 평균 경쟁률은 168대 1로 당시 서울 최고 기록을 썼다.
특히 전용면적 100㎡가 넘는 10가구는 분양가가 20억~30억원 이상인데도 평균 경쟁률이 171대 1로 오히려 높아졌다. 이들 주택은 15억원이 넘어 주택담보대출이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20억1000만원대인 101㎡짜리는 경쟁률이 848대 1까지 치솟았고 30억7600만원대인 155㎡도 111대 1이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전용 85㎡ 초과 물량은 절반이 가점과 상관없는 추첨제였고, 그 중 절반인 25%는 유주택자에게 돌아갔다”며 “집을 한 채 가진 강남 주민들도 청약을 신청할 수 있어서 경쟁률을 끌어올렸고,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려는 5060 세대들의 청약 참여도 많았다”고 전했다.
앞서 분양한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 아파트 청약 분위기도 비슷했다. 일반분양 물량 330가구의 평균 경쟁률이 114.3 대 1이었는데, 평형대가 넓고 분양가가 비쌀수록 경쟁률이 치솟았다. 전용 107.9㎡로 분양가가 20억원이 넘는 6가구 모집엔 3446명이 몰려 경쟁률이 574.3대 1을 기록했다.
실제로 A씨처럼 낡은 아파트를 팔고, 주변에 새 아파트를 청약받는 1주택자들은 상당한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대치 푸르지오 써밋’의 경우 전용면적 101㎡의 분양가는 20억원이다. 반면 지난 2014년 입주한 인근 단지 대치래미안하이스턴 101㎡의 6월 말 실거래가는 28억원이다. 무려 8억원 차이다.
정부는 분양가를 낮추면 주변시세가 따라 내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반대로 새 아파트가 시세를 따라 오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1주택자는 2년 이상 거주하면 기존주택을 팔아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새 아파트 당첨으로 웃돈을 기대할 수 있고, 기존 주택을 팔아 큰 차익도 얻을 수 있는 ‘1석 2조’의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새 아파트 청약에 나서는 사람들은 무주택자나 1주택자라 해도 땅이나 건물, 금융자산을 가진 사실상 부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은 청약 떨어질까 걱정하지, 돈이 없어 당첨되고도 계약 못할까 걱정하는 이는 없다”고 단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주택 수만 기준으로 ‘투기냐 아니냐’를 가름하면서, 부동산 이외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에게 새로운 주거사다리를 부여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로 새 아파트 청약물량이 줄면서 이러한 고가아파트 ‘로또청약’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분양가 통제, 대출 규제로 고가주택 청약시장은 부자들만 돈 놓고 돈 먹는 구조가 됐다”며 “대량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강남부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