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충격에 정책 리스크 가세..금융불안 증폭
by안근모 기자
2008.03.13 16:31:31
정부 "6% 성장에 경상수지 안정화"..시장불안에도 침묵 일관
돈줄 마른 외국인 "원화 더 떨어진다"..주식·채권 팔아 이탈
[이데일리 안근모기자] 원화 가격이 추락을 거듭(환율 급등)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가격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고, 우리 돈과 달러를 일정기간 바꿔 쓰는 통화스왑 시장도 휘청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주된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시장의 충격은 유별나다.
달러/원 환율은 최근 10거래일 연속해서 급등, 18년만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최장기간의 상승행진을 펼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단 열흘동안 4.7%나 떨어졌다. 전세계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달러화보다 더 위험한 통화가 된 것. 열흘간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10%나 곤두박질쳤다.
외국계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의 원화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며 '셀 코리아(Sell Korea)'를 종용하는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무려 26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가진 나라의 금융시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불안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와중에도 고(高)성장률 지향의 정책을 표방, 해외발(發)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킨데 이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이렇다할 액션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 불어닥친 충격의 1차 진원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인한 국제금융시장 불안이다. 달러화 추락으로 원자재가격이 급등, 경상수지가 대규모 적자로 반전된 상황에서 이를 메워줄 외채유입마저 여의치 않아진 것.
해외 돈줄이 막힌 외국인은 주식과 채권을 팔아 달러로 바꾼 뒤 본국으로 송금하기에 여념이 없어졌다. 이에 주식과 채권 원화값은 추락하고 스왑시장에서는 달러자금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지난 12일의 경우 국내채권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은 20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채권만기가 돌아오자 재투자를 하지 않은채 달러로 돈을 바꿔 빼내가버렸다.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올 들어 2달여동안에만 무려 13조1600억원어치(약 135억달러)의 주식을 팔아 치웠다.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공개된 뒤로 외국인의 환율 상승 기대심리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기획재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로 6%를 고수하면서 "경상수지 동향과 괴리되지 않도록 환율을 안정화"하겠다는 외환정책 방향을 밝힌 것에 시장이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리먼브러더스는 13일자 보고서에서 "새 정부의 성장률 목표 6%는 3.5%를 상한으로 하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와 공존할 수 없다"면서 "이는 환율과 금리 상승을 야기해 내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간의 정책 부조화로 금리와 환율이 더 오르고 내수는 더 위축될 위험이 있다면 외국인으로서는 한국에 투자할 유인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 리먼브라더스는 그래서 "당국이 강력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올 상반기 한국의 원화가치는 더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장중 칼라일캐피탈 부도설로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됐는데도 정부는 이렇다할 구두개입조차 하지 않았다. 환율상승을 옹호하는 침묵과 노액션의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까지 여겨지는 대목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날 한국은행이 1개월짜리 초단기 FX스왑 시장에 개입(현물환 매도+선물환 매수)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통화스왑시장에서 1년짜리 CRS 금리는 전날보다 0.22%포인트 떨어진 2.42%를 기록, '패닉' 현상이 빚어졌던 지난해 11월21일 사태(2.29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원화를 준 대가로 받는 이자가 은행 정기예금 이자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