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8.01.29 17:03:22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대한민국이 갑자기 영어교육으로 떠들썩합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내는 새로운 교육정책은 하나같이 '파격적'입니다. 의욕이 너무 앞서다 보니 설익은 정책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선생님, 학원 관계자, 심지어 해외유학생과 영어 좀 한다는 주부들까지 교육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인수위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영어교육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돼 버린 셈인데요. 인수위를 출입하는 좌동욱 기자는 교육정책만큼은 차분하고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당부합니다."일반과목도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다"(이경숙 인수위원장, 22일 기자들과 일문일답)
"(영어) 몰입식 교육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어촌 중심으로 시범 실시돼야 한다"(이주호, 25일 평화방송 라디오 출연)
"영어 몰입식 교육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할 생각이 없으며 인수위 차원에서 그 같은 계획을 밝힌 바도 없다"(28일 이동관 대변인 브리핑)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병역특례'를 준다는 안은 '영어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28일 오전 이주호 인수위원 해명자료)
"해외 체류 중인 유학생을 공익 근무요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28일 오후 이동관 대변인 브리핑)
인수위의 '오락가락' 교육정책이 볼수록 '가관'입니다. 아침에 부인한 정책을 오후에 뒤집는 일까지 나타납니다. 아침에 내린 법을 저녁에 고친다는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따로 없습니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했습니다. 그런 정책을 지난 한달간 인수위가 180도 뒤집었습니다. 충분한 검토와 검증이 전제되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인수위의 태도를 보면 일단 내놓고 보자는 식으로 보입니다. 2010년부터 일반고교에서 영어교육을 영어로 수업시키겠다는 '복안'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2010년이면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고교에 입학하는 시점입니다.
따로 공부를 해오지 않던 학생이 2년 후 영어로 수업을 받게 되면 그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학교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할 수 있는 교사 수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 2006년 전국 초중고 영어 담당 교사에 대한 교육부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영어 교사는 전체의 49.8%인 1만6171명에 그칩니다. 이 역시 교사들이 '주당 1시간 이상 수업할 수 있다'는 질문에 스스로 밝힌 통계수치에 불과합니다.
발빠른 학부모들은 정부를 탓할 겨를도 없이 자녀들이 다닐 영어 회화 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수위의 교육정책 발표 후 조기 유학에 대한 상담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이쯤이면 "영어 과외를 받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약속이 허언(虛言)으로 들립니다.
이런 정책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교사 확보 방안과 예산 계획을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인수위는 이런 질문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은채 입을 닫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새 정부의 정책도출 과정입니다. '전 국민이 전문가'라는 교육 정책을 폭넓은 의견수렴없이 몇몇 전문가가 생산하다 보니, 반대와 비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이다.
국민들에게 정책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하니, 처음에 생각했던 정책들이 '여론'에 밀려 뒷걸음질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을 되풀이하다 보면, 새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 지 걱정이 앞서네요.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정이 '부동산 정책'이라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정책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집값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전가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