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하정민 기자
2003.01.09 14:31:43
뇌성마비 최초 서울대생, 졸업5년만에 SK C&C입사
[edaily 하정민기자] "제 이야기는 성공스토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제게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라고 하지만 단지 사회가 만든 평범한 기준들을 제가 이겨냈을 뿐입니다"
선천성 뇌성마비 중증 장애를 딛고 서울대에 입학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정훈기씨(28세)가 졸업 5년만에 대기업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에 성공했다.
정씨는 SK그룹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6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이번달 1일자로 시스템통합 업체인 SKC&C에 입사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 대기업에 입사한 일은 있었지만 양손과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3급 뇌성마비 장애인이 입사한 일은 처음이다.
정씨는 출생시 탯줄을 자를 때 산소공급이 제대로 안돼 신경세포들이 회복불가능 수준으로 손상됐다. 다행히 4시간만에 기적적으로 숨을 쉬기 시작했으나 뇌성마비에 걸려 큰 고통을 겪었다.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낸 정씨는 지난 94년 서울대 임산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했으며 98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뇌성마비 최초의 서울대생`으로 유명인이 된 그에게도 불황의 여파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졸업직후 작은 벤처회사에서 6개월간의 수습생활을 했지만 그를 정식으로 채용하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IMF로 인한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관문을 뚫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기 때문.
이후 정씨는 방향을 돌려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99년 봄부터 1년간 일본재활협회에서 실시하는 더스킨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리더 육성 사업에 한국 대표 1기 연수생으로 참가한 것. 일본국립재활센터에서 시각, 청각, 소아마비 등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4명의 아시아인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한 경험을 담아 2000년 12월 `도전만이 희망이다` 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또 꿈에도 바라던 대기업 그룹공채에도 합격했다. "20대에 대기업 면접까지 간 것만으로도 대성공" 이라고 생각할만큼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정씨의 굴하지 않는 의지가 이를 극복했다.
그는 "대학입시 때는 비장애인들과 무조건 동등하게 시험을 봐야한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주관식 빨리쓰기와 답안지 마킹 같은 평가와는 무관한 연습을 하고서도 재수를 해야했다"며 "이번 입사전형 과정에서는 장애인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했다"고 밝혔다. SK는 정씨의 요구에 따라 답안지 마킹과 별도 고사장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SK그룹 채용담당자는 "정씨는 다른 입사 지원자들과 똑같은 기준의 평가과정을 거쳐 6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공채로 합격했다"며 "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특혜나 차별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는 정씨의 새로운 꿈은 핸디캡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IT엔지니어다.
"2019년쯤에는 우리나라도 고령사회가 된다고 하네요. 저도 한 120살까지 살 생각인데 휠체어를 타고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침침해져도 불편없이 IT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의 포부는 이렇게 다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