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천하' 터키 쿠데타‥숙청 피바람 몰아치나

by장순원 기자
2016.07.17 16:16:12

軍 일부만 쿠데타 참여‥진압에 급격히 동력 상실
군인 포함 3천명 체포‥숙청 피바람 거세게 불듯
터키 정정불안은 가속‥국제사회 터키 정국에 촉각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터키 군부의 군사쿠데타가 반나절 만에 막을 내렸지만 터키 정국은 후폭풍에 요동치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은 쿠데타 세력을 대대적으로 체포하면서 피의 숙청을 예고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이번 쿠데타가 터키 정국과 중동 정세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밤 터키에서 발생한 군부의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실패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한때 수도 앙카라와 최대도시인 이스탄불 국제공항을 장악하기도 했던 쿠데타 세력은 초반 기세와 달라 불과 반나절도 버티지 못했다. 휴가 중이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6시간 만에 이스탄불 국제공항을 통해 복귀해 ‘쿠데타는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서면서 빠르게 진압됐다.

이번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군부 전체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일부 소장파 장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터키에서 이전에 발생한 4건의 군부 쿠데타는 합동참모본부 주도로 예고까지 한 뒤 거행됐다. 이번에는 공군, 치안군, 일부 기갑부대만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댔지만 궁지에 몰린 군 내 반(反)에르도안 세력이 성급하게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군 전체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꺾인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시민의 저항도 한몫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데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자 대통령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탱크를 막고 군인들과 맞서는 모습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쿠데타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컸다는 점도 등을 돌리게 만든 요인이다. 시민과 경찰 161명,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 104명 등 모두 265명이 사망했고 144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제히 쿠데타 기도를 비난하면서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하며 국제적으로도 고립됐다.

에르도안 정권은 전날 밤 발생한 ‘6시간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을 비롯해 반 쿠데타 세력 약 3000명을 체포했다. 여기에는 쿠데타의 주모자로 알려진 전직 공군 사령관 아킨 외즈튀르크와 육군 2군 사령관 아뎀 후두티 장군, 제3군 사령관 에르달 외즈튀르크 장군 등도 포함됐다.

터키 당국은 또 알파르슬란 알탄 헌법재판관도 붙잡았으며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터키 전역의 판사 약 2745명을 해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새벽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연설을 통해 “(쿠데타 관련자들은) 반역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쿠데타 세력을 엄히 다스리겠다고 밝힌 만큼 판사의 해임을 넘어서는 숙청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숙청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고 있다. 터키 군인 8명이 터키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웃 그리스에 망명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드로안 대통령은 자신의 정적인 이슬람학자 페툴라 귤렌을 이번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미국에서 추방해 터키로 넘겨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미국은 터키 정부에 귤렌의 범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먼저 제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번 쿠데타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서면서 귤렌의 송환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터키가 충돌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쿠데타 시도가 미수에 그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지는 한층 탄탄해질 전망이다. 일단 쿠데타 차단을 명분으로 자신에게 적대적이던 군부를 압박하는 한편 눈엣가시 같던 귤렌 추종자를 쓸어내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년간 이어온 철권통치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숙원’인 대통령제 개헌을 가속할 공산도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대파를 가혹하게 다룬다면 정치 사회적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터키의 정정불안이 자칫 통제 불능의 혼란과 전면적인 내전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주요국은 쿠데타 이후 터키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터키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장악한 IS를 척결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면서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동 난민을 걸러주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장 터키의 인지를릭 공군기지 운영이 마비돼 IS 공습을 중단했다. 쿠데타 시도 과정에서 전력공급이 중단됐고 기지 상공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터키의 모든 당사자가 법치에 따라 행동을 하고 추가 폭력이나 불안정을 야기할 어떤 행동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탄압을 더 강화하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