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경제]①위기극복 새 대안 `협동조합`

by권소현 기자
2012.07.03 15:48:05

7월7일 유엔 제정 `세계협동조합의 날`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7월 03일자 24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1. “노인 요양시설에 가지 말고 노인 공동체를 만들자”

2000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갓 은퇴한 할머니 10여 명이 모였다. 남은 인생 서로 의지해가며 외롭지 않게 살아보자며 실버 공동체를 구상했다. 우선 시유지를 싼 가격에 임대해 1층과 꼭대기 층에 공용공간을 마련하고 2층부터 6층까지 58가구를 배치한 아파트를 세웠다. 시가보다 저렴한 입주금에 노인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가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60~80대 노인들의 입주신청이 쏟아졌다.

현재 69명의 주민이 모여 살면서 식사와 청소, 빨래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같이하고, 합창단이나 요가클럽 등 15개 동아리를 만들어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바로 주택조합 ‘로푸키리’의 운영방식이다.

2. 연세대학교 안에는 하얀샘, 슬기샘, 알뜰샘, 솟을샘, 사진샘, 본뜰샘 등 각종 ‘샘’이 있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생활협동조합이 대학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과 서점, 문방구, 사진관 등의 이름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기본이다. 이들 매장 운영수익은 후생복지관 건립기금이나 장학기금, 학생 비품구매 지원비 등으로 쓰여 결국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기업형태로 부상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대표 사례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정의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단체다.

일반 기업이 출자한 만큼 의결권을 확보하는 반면, 협동조합은 1인 1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민주적인 운영이 가능하고 조합원들의 편익을 우선시한다. 주스로 유명한 미국 썬키스트는 중간 상인의 독과점 횡포에 맞서 6000여 명의 오렌지 재배 농민과 8개 협동조합이 뭉쳐 만든 판매 협동조합 연합회다. 조합원이 생산한 오렌지를 적당한 가격에 사서 판매함으로써 조합원들의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상생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은 위기에 빛을 발했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독과점을 부추겨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구조를 낳았지만, 협동조합은 ‘함께 잘 살아보자’라는 공동체적 의식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위기 방패막이 된 것이다. 스페인의 3대 기업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연합체는 금융위기가 닥치자 협동조합 간 협력에 나서 단 한 건의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넘겼다.

지역경제 차원에서도 협동조합은 기업 이상의 몫을 한다. 소규모 창업이나 마찬가지여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유통과정을 단축해 제품 가격을 낮춤으로써 경제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강원도 홍천 영농조합법인이 세운 갓골작은가게는 유기농 잡곡과 통밀빵 등 지역 농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해 가격은 크게 낮추고 지역 농민들의 소득은 높였다.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에 일정부분 수익을 돌려주기도 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복지에도 기여한다. 스페인의 명문 축구구단 FC 바르셀로나는 축구팬 17만여명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다. 선수들은 스폰서 광고 대신 유니세프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을 누비며, 구단 수입의 0.7%를 에이즈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며 유니세프에 내놓기도 했다. 돌봄 노동, 대안학교 등의 공공서비스도 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협동조합 바람이 일고 있다. ICA에 따르면 2008년 세계 300대 협동조합의 총 매출규모는 1조 6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따져보면 세계 9위에 해당한다. 유엔도 이 같은 협동조합의 순기능에 주목해 올해를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협동조합은 매우 독특하고 가치 있는 기업모델로 빈곤을 낮추고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강조했다.
권소현 기자 juddi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