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진우 기자
2005.06.01 18:26:38
[edaily 이진우기자]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가는 현재보다 미래가치를 반영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꿈을 먹는 주식이 많아지면 시장은 어지러워지기도 합니다. 증권부 이진우 기자가 `꿈을 먹고 자란다는 주식`들이 만들고 있는 시장의 무질서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주식시장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기 전에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시가 2억원짜리 집이 있습니다. 이 집 주인은 2000만원을 들여 소나무 여러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면 그 집값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소나무가 맘에 드는 사람은 2억2000만원에서 좀더 내겠다고 할 것이고 소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2억2000만원을 못주겠다고 할터이지만 아마 2억2000만원 언저리가 그 집의 적당한 가격이 될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런 계산이 일반적이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셈법이 나타납니다. 일단 주인이 소나무를 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집값은 뛰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주인이 소나무 시장에 몇번 다녀오면 벌써 집값은 두 배가 됩니다.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를 골라 마당에 심고 나면 집값은 거기서 또 두배가 됩니다. 소나무 심는데 든 비용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1000만원이라도 좋고 100만원어치만 심어도 됩니다. 뭔가 심었다는 게 중요하고 소나무라면 금상첨화죠. 2억짜리 집을 순식간에 10억짜리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믿기 어려우시다고요? 이번엔 가정(假定)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코스닥업체 인젠(041630)은 리젠바이오텍이라는 바이오 회사에 12억원을 투자했는데 주가는 이런 재료를 바탕으로 한 달 만에 1200원대에서 2800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큐앤에스(052880)라는 회사도 마이진이라는 바이오업체에 11억원어치 주식을 넘겨주고 그 회사 지분 20%를 받았는데 그 이유로 시가총액 150억원하던 회사가 시가총액 700억원으로 뛰어 올랐습니다.
서울일렉트론(032980)도 13억원을 들여서 진켐이라는 바이오업체에 투자했습니다. 그 덕분에 주가는 5배나 올랐습니다. 에이스일렉(038690)트로닉스도 같은 케이스입니다. 바이오쎌이라는 바이오업체에 25억원을 투자하자 60억원이던 시가총액이 단숨에 160억원으로 뛰어올랐지요.
언뜻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이런 현상들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들어보면 각각의 회사들이 투자한 바이오업체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유망 벤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술을 개발중이지만 조만간 대박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런 대단한 업체라면 그 바이오업체 지분을 판 당사자들은 바보인가요? 그 잠재력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런 "헐값"에 팔았을까요. 엄청난 제품의 시판이 눈앞에 와 있는데 왜 회사의 경영권을 남에게 넘길까요.
황우석 박사가 한민족을 구원할 영웅으로 묘사되고 바이오가 미래의 밥줄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바이오 업종의 몸값이 오르는 건 당연해보입니다. 소나무의 인기가 높아지면 소나무값이 비싸지는 건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이오 업종과는 전혀 관계없던 회사가 바이오업체의 지분을 샀다고 값자기 몸값이 두 배 세 배로 뛰는 건 넌센스가 아닐까요.
"나이키를 신는 순간 나는 마이클 조던이 된다"는 건 광고에나 나올 법한 문구지만 나이키 농구화를 사서 신자마자 거짓말처럼 실제 몸값이 마이클 조던처럼 뛰어 오르는 현상이 주식시장에서는 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이키를 신었다고 갑자기 마이클 조던이 된 듯 뽐내는 아이도 볼썽사납지만 그런 아이를 스카웃하겠다고 덤비는 투자자들도 제정신은 아닌 듯합니다. 혹시 주식을 마치 `금나와라 뚝딱`하면 돈이 우수수 쏟아지는 요술방망이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시쳇말로 주식시장이 돈놓고 돈먹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한 시장에서는 제2의 냉각캔, 제2의 무세제 세탁기가 또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그 손해는, 그 절망은 또 누가 감당해야하나요.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꿈만" 먹고 자라는 주식은 없습니다. 주식은 꿈을 잃지 않는 직원들이 열심히 흘리는 "땀"을 먹고 자라든가, 아니면 꿈만 좇는 투자자들의 "피"를 먹고 자랄 뿐입니다. 시장 어디에도 요술방망이는 없습니다.
진정 주식시장에 쏟은 땀만큼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이성을 흐트려놓는 `꾼`들의 음모에 쉽게 농락당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