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도 너무 오른 달러…월가는 하락 베팅 중
by정다슬 기자
2024.12.16 11:56:08
달러 올해만 6.3% 올라…통화 전반에 걸쳐 강세
트럼프 1기행정부에도 5% 올랐다 이듬해 10% 떨어져
"지속가능한 수준 넘었다"…월가 내년 하반기 약세 전망
여전히 변수 많아 불확실성 커…FT "통화전쟁 일어날 수도"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달러 가치가 고공행진 중이다. 월가에서는 2016~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역사적 교훈에 따라 내년 하반기에는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것에 베팅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5일(현지시간) 모건스탠리에서 JP모건체이스, 소시에테 제네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미쓰비시 UFG 금융그룹 등이 내년 중반에 달러 가치가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질 금리 하락으로 달러화를 보유할 상대적인 매력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투자심리 개선으로 비(非)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달러화 가치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모건스탠리의 매슈 혼바크 거시경제 전략가와 제임스 로드 외환·신흥시장 수석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말 달러화 가치가 현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소시에테 제네랄은 ICE 미국 달러지수가 내년 말 6%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통화전략책임자인 킷 주쿠스는 달러 강세가 “속이 뒤틀리는 수준”이라며 “우리는 어떤 자산의 가격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현물 지수는 올해 들어 6.3% 상승했는데 대부분이 11월 5일 미국 대선으로 트럼프가 당선된 후 이뤄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대규모 감세 정책과 관세 부과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금리 추가 인하를 어렵게 할 것이란 판단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미국 수출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약(弱)달러를 선호했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최근 트럼프 당선인이 달러를 대체하려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것 역시 달러 강세에 힘을 보탰다.
달러 강세는 달러가 아닌 통화 전반에 걸쳐 약세를 가져왔는데 유로는 2년 만 최저치로 떨어지며 거의 1대1 수준까지 떨어졌다. MSCI 신흥시장 통화지수는 4개월만 최저치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2007년 수준인 7.50위안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월가는 막상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달러 강세 속도는 훨씬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했던 2016년 달러는 5% 이상 상승했으나 2017년 10% 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전과 같은 급락세가 연출될 것이라고 예상할 순 없지만, 달러 약세 흐름은 재현될 것이란 전망이다.
포인트72 애셋매니지먼트의 소피아 드로소스 전략가는 달러화에 대한 낙관론이 이미 가격에 많이 반영됐다면서 유럽 등 미국 이외 지역에서 성장세가 회복될 경우 달러화에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로소스 전략가는 유럽연합(EU)이나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행보 등을 언급하며 “내년 들어 글로벌 경제가 강해질 수 있는 기반 요소들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모건스탠리 전략가들은 내년 미국 국채 금리가 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더 빨리 하락하면서 주요 국가 간 금리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관세가 미국 경제에 하방압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대로 관세가 전방위적으로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관세가 보복관세를 부르는 ‘부(否)의 연쇄’가 확산하면 미국 경제 역시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경제학자이자 수십년 간 글로벌 통화시스템을 연구해 온 배리 아이켄그린은 “관세로 인해 철강과 알루미늄 가격이 오르면 이런 수입 원자재를 사용하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적자가 확대되고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것 역시 달러엔 약세 요인이다. JP모건의 미라 챈던 글로벌 외환전략 공동수석은 “연준이 상당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달러화가 상대적인 금리 및 성장세 우위를 잃게 된다면 달러화 약세가 매우 커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어떤 경로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지, 또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에너지 공급과 무역로에 또 다른 어떤 변수를 가져다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4일 기사에서 관세전쟁이 통화전쟁으로 바뀔 가능성을 지적했다. 지금 당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강달러를 문제 삼고 있지 않지만, 언제나 그랬듯 약달러를 주장하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금융시장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에 맞춰 의도적인 위안화 약세를 유발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별도 기사에서 아시아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무역정책과 강달러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체 투자자산으로 반도체 제조업체와 은행 주식, 안정적 수익 가능성 있는 달러 표시 부채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도 미중 갈등에 따른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국가들이자 상대적으로 관세 영향을 적게 받을 투자처로서 주목받고 있다. 금은 내년에도 안전자산으로서 강한 입지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