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꼭 제가 살릴 께요"..'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대상작 감동

by김현아 기자
2013.07.19 17:08:29

일반부 대상에 전미화(강원 원주, 33)씨 수상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급성간경변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간을 이식해주고, 현재는 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는 딸의 가슴 뭉클한 편지가 전국 14만 8000여명이 응모한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주인공은 강원도 원주에 사는 전미화씨(33)다.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김준호)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를 개최했다. 일반부 대상을 차지한 전씨 외에도 초등부 저학년(1~3)은 왕지현양(대구 대성초등), 고학년(4~6)은 진수정양(강원 주문초등), 중등부는 홍유정양(부산 덕천여중), 고등부는 박준영군(성남 보평고)이 대상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을 차지했다. 시상식은 7월 19일 오전 11시 포스트타워(중구 명동)에서 열린다.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는 우정사업본부가 편지쓰기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00년부터 열고 있는 국내 최고의 대회로, 입상작은 작품집으로 발간해 전국 우체국과 학교 등에 배포할 정도로 권위가 있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전씨는 편지글에서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희생으로 보답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버지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자신의 건강 때문에 딸의 몸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과,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자신의 간을 이식해서라도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기를 바랬던 딸의 애틋한 마음이 편지에 녹아 있다.

김준호 우정사업본부장은“우정사업본부는 편지쓰기 문화를 활성화해 우리 사회 소통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김준호)는 19일(금) 서울 중구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 수상자 전미화(강원 원주, 33세)씨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일반부 대상(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작 전문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 아빠는 꼭 제가 살릴 테니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살릴 께요...’ 2012년 7월의 어느 날 제 일기장에 적혀있는 글귀랍니다. 그리고 보니 2012년에도 무더운 여름이 있었네요. 하루 종일 갑갑한 전투화를 신고 근무하는지라 누구보다 더위를 싫어하는 저인데, 작년 여름은 땀방울보다 눈물방울을 더 많이 흘렸던 시간... 2012년 여름은 제 기억 속에 그렇게 남아 있네요.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딱 일주일 만이었지요, 여유롭게 한 주를 마감하던 금요일 오후, 다급히 걸려온 언니의 전화 한 통, “아빠가 병원에 실려 가셨는데... 뭔가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멍한 기분이었어요.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장면인데 왜 갑자기 나에게 벌어진 거지’ 그렇게 멍한 기분으로 달려간 19번 국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오가던 그 길이 그날따라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 지요. 겨우 달려가 마주한 아빠의 첫 모습. 휠체어에 겨우 앉아 병실로 옮겨가면서도 “왜 여기까지 왔냐” 며 손 사례를 치는 힘없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답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으니 내일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아빠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그길로 화장실로 달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시작되었네요. 서울로 옮겨가 정밀 검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급성 간 경변. 그리고 유일한 해결책은 간이식 수술이니 3개월 안에 공여자를 구해 오라는 것이었죠. 엄마와 언니가 쓰러져 오열하는 가운데 그래도 저는 감사했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다행이다 내가 살리면 된다.’ 간이식 수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순간 다짐했답니다. ‘아빠는 꼭 내가 살릴 거야.‘

하지만 저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아빠는 언니와 제 입에서 ’이식‘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죠. 딸들에게 부모가 되어 그런 몹쓸 짓을 할 바에는 차라리 이쯤에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너무나 확고한 아빠의 마음을 돌리는 일, 정말 힘들었어요. 뇌사자 이식 대기 신청도 해 봤지만 이미 우리 앞에는 몇 천몇의 대기자가 있고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3개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이라는 말이 있죠. 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 알았답니다. 뇌사자 이식은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이식 얘기가 나오면서 연락을 끊기 시작하는 친척들, 그리고 딸들에게 절대 받지 않겠다는 아빠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답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눈물 보이지 않고 씩씩했던 저이지만, 사실 그때 단 하루도 울지 않았던 적이 없답니다. 밥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업무 중에도, TV에서 개그프로를 보다가도 눈물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어요. ’내가 일하고 있는, 온통 건장한 남자들로 가득한 이 부대에서 나를 도와줄 단 한 사람도 없다니...‘ 가진 것을 모두 줄 테니 제발 아빠 좀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하고 싶었어요.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병원 측 설득에 따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부모님 몰래 언니와 저의 공여자 검사가 진행되었죠. 1,2차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에서는 체구가 작은 여성들은 보통 남성에게 이식을 할 때 2:1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둘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저는 그 순간에도 확신했어요. 언니는 몸도 약하고 돌봐야 할 조카도 있으니 꼭 저 혼자 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종교가 없는 저이지만 매일 밤 신께 기도했어요.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름여의 초조한 시간이 또 지나고 드디어 나온 결과는 저 혼자서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통보. 업무시간에 그 전화를 받으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감사 하다고 괴성을 지르며 울었답니다. 아빠와 혈액형도 다르고 간 사이즈가 작은 여자지만 이식을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조건을 갖추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 기도를 들어주신 신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한 달. 아빠를 설득하는 참으로 길고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요. 매주 집에 가서 아빠한테 화내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저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는데 아마 아빠도 그러셨겠죠. 너무나 강인하게 36년 군 생활을 해 오신 분이 목 놓아 우시며 결정하셨을 정도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대로 어렵게 결정을 해 주셨고 그렇게 2012년 9월 14일 아빠와 저의 간이식 수술이 시작되었지요.

’수술 전날 잠이 안 올 거야, 수술실 들어가면 무서울 거야.‘ 라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저는 너무도 편안하고 수술전날 숙면도 취했고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가 되기 전까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답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절실하고 간절히 기도하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13시과 18간이라는 대수술을 통해 그동안 아빠를 힘들게 한 간은 모두 제거가 되었고 저의 간 65%가 아빠의 몸 안에 자리 잡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답니다. 잠시 잠자고 나왔을 뿐인데, 아빠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회가 열렸다니 말이죠.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풀리지 않아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프다는 말보다는 “아빠는?” 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네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되겠지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불편함 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 되었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다시 복직해서 군 생활을 하며 그 힘겨웠던 시간을 떠올리고 펜을 잡고 있자니 새삼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네요. 물론 여기서 우리가족의 아픔이 끝이 났더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았는데... 면역억제제 부작용으로 인해 수술후 6개월 만에 아빠의 몸에서 발견된 대장, 간, 폐암은 또 다시 우리 가족에게 큰 시련을 주었고 아빠는 또 다시 수술대에 오르셔야 했죠. 이식도 모자라 암이라니... 짧은 시간동안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거치면서 1년 사이 20킬로가 넘게 살이 빠진 아빠를 보며 처음에는 힘내시라는 응원의 말도 못 건넬 만큼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수술도 잘 끝났고 이제 앞으로 남은 6개월의 항암치료만 잘 이겨내시면 더 이상의 아픔은 없을 꺼라 저는 확신한답니다. 이식환자의 몸으로 항암치료를 버틴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아요.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그랬답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는 늘 한 가닥 희망도 잃지 않았고, 매일 같이 간절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기도하며 꿈꾸었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그 꿈이 이루어졌답니다.

그러니 아빠, 아빠도 힘드시겠지만 절대 포기하시면 안돼요. 여군으로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저에게 아빠는 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아빠는 꼭 살아남는 강한분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부모가 돼서 자식들에게 이런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살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그런 마음 안 가지셔도 되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13년을 늘 객지에서 혼자 살던 제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오랜 시간 함께 보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빵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제빵도 배우게 되었고, 몸에 좋은 콩고기며 요거트 만드는 법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많은 주위 분들로부터 효녀라는 과분한 칭찬까지 받고 있는 걸요. 그리고 아빠의 우려와는 달리 제 배의 상처는 너무나 예쁘게 잘 자리 잡아서 올 여름에는 과감히 비키니도 입을 생각이랍니다.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뱃살이 문제지만요.

우리 가족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더 큰 행복이 오려고 잠시 모진 시련이 찾아온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 보아요.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3년 5월 3일

막내딸 올림

추신)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아빠는 본인이 ET같다고 하시는데, 늘 말씀드리지만 아빠는 두상이 예뻐서 어떤 스타일을 하셔도 미남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