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中전문가 류재윤 박사 "중국인 마음을 얻는 법 따로 있죠"

by김대웅 기자
2016.05.09 11:13:43

삼성그룹 대(對)중국 사업 최고의 협상전문가
韓기업 사상 최장수 中 베이징 주재원
'지금이라도 중국을 공부하라' 저자
"중국 특유의 게임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

[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한국 주요 도시들이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등 최근 한·중간 경제·문화적 교류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중국을 다녀온 많은 한국인들이 여전히 “중국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특히 사업차 중국인을 만난 한국인들은 그들이 막판에 딴소리를 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 상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20여년 동안 대(對)중국 협상전문가로 활동해 온 류재윤 박사(베이징대 사회학·54)는 이에 대해 “중국인 생각과 표현법이 우리와 전혀 다른데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중국 특유의 관계 맺음과 체면, 과장법, 은유법, 손님접대법 등이 있는데 한국식 혹은 서구식으로 이해하려 들다 보니 쉽게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다.

류재윤 박사(사진=이데일리).
류 박사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그룹 베이징 주재원으로 근무했으며 삼성전자(005930) 삼성전기(009150) 삼성중공업(010140) 호텔신라(008770)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그룹 관계사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협상 전문가로 활약했다.

그는 특히 삼성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한국기업 사상 최장수 베이징 주재원이기도 한 그는 중국에서 중국공산당 최고 엘리트들을 교육하는 중앙당교와 국가정보센터 등에서 강사로 초빙할 정도로 중국인이 인정하는 ‘중국통’이다.

류 박사는 9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중국은 매우 복잡하고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을 상대할 때에는 그들만의 ‘게임의 법칙’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식 문화와 사상에 길들여진 탓에 중국에 대해서도 이같은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며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현재의 글로벌화란 서구식 로컬화일 뿐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문화적,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우리 문화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많은데 글로벌의 잣대를 들이대며 멀리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유 문화의 색채가 짙은 중국인들에게 우리가 당연시하는 (서구식) 글로벌 표준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오히려 불편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지금이라도 중국을 공부하라2’를 출간했다. 중국에서 사업·교육 등의 기회를 찾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며 중국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중국인과 교류할 때 그들의 마음을 얻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다.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특유의 꽌시(關係)와 미엔쯔(面子), 즉 관계와 체면에 대한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류 박사는 강조한다. 물론 우리 식의 관계나 체면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중국의 꽌시는 단순한 인간관계나 부정적 물질교환의 의미가 아니다. 류 박사는 “중국인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즉 ‘우리’와 ‘남’으로 철저히 구분한다”며 “우리 범주에 들어올 경우 그들은 무한정 마음을 열어젖히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양인들은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금전 거래때 계약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국인들은 꽌시 속에서 계약서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꽌시 내에서는 계약 기간, 위약 조건 등도 없이 오직 신뢰만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것이 중국식 합의이고 게임의 규칙이다. 류 박사는 “서양이 법률과 제도, 시스템을 만드는 동안 중국은 도덕과 신분을 공고히 해나갔다”며 “중국인에게 재산 가치 흐름보다 도덕 가치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꽌시의 형성은 물론 오랜 시간과 진실됨이 필요하지만 확장성은 매우 넓은 편이다. 그는 “일단 꽌시가 형성되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구의 친구가 한 부탁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들어준다”면서 “서양의 관계는 하나가 빠져도 모를 장작 묶음이라면 중국의 꽌시는 동심원과 같아 파문이 쉽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미엔쯔 역시 중국 고유의 문화가 녹아있는 정서다. 스스로의 평가보다 상대방이 나를 판단하는 형상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일종의 형식주의의 발로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쉽게 부정하지도 않는다.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중시하는 자존감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류 박사는 자신이 삼성에서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던 일을 떠올리며 “상대가 장소마다 말을 바꾸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그것 역시 미엔쯔의 한 형태”라며 “둘이 있는 장소인지, 여러명이 있는 자리인지 등에 따라 중국인은 전혀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중국인이 즐겨 쓰는 상징(象徵) 문화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할 요소다. 중국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상 속에서 은유와 상징을 즐겨 사용하는 나라다. 이는 한자가 표의문자(表意文字)다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류 박사는 “중국인들은 같은 소리의 다른 글자인 해음이나 고사성어 등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대화, 한자, 그림 등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된다”며 “상징의 속뜻을 이해하는 것은 중국인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류 박사는 또 중국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맨들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은 손님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크게 환대받는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며 “중국인이 “알았다”고 답하더라도 이는 미엔쯔를 고려해 “당신 생각에 동의한다”는 정도의 표현이지, 그것이 계약 성사로 이어질 것으로 착각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들에서 한국인이 쉽게 오해해 중국인이 약속을 잘 어긴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 중국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본사형 전문가’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본사형 전문가’는 중국의 실제 모습에 접근하지 못하고 보고용 정보만을 취득해 안일하게 만족하는 케이스다.

류 박사는 “우리와 다른 문화를 접할 때에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리면 좋은 면을 더욱 많이 찾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재윤 박사

1962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칭화대 MBA와 베이징대 사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1989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1세대 지역전문가로 선발돼 되어 대만 연수 이후 삼성의 역사적인 중국길을 뚫었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그룹 베이징 주재원으로 근무했으며 삼성전자(005930) 삼성전기(009150) 삼성중공업(010140) 호텔신라(008770)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그룹 관계사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협상 전문가로 활약했다. 논문으로는 ‘文化差異中的企業組織忠誠與認同’, ‘面子文化和溝通’, ‘三星忠誠文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