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도발', 제약업계도 밀어넣기 영업에 몸살 앓는다

by천승현 기자
2013.05.08 15:06:11

제약사 영업사원들 매출 압박에 월말에 의약품 대랑 발송
재고 처리 과정서 비용 낭비·의약품 오남용 초래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남양유업의 ‘밀어넣기’ 영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지면서 제약업계의 불법 영업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의약품 밀어넣기 영업은 대규모 폐기 처분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 등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지속적으로 밀어넣기 영업을 펼치고 있다. 목표 실적을 채우기 위해 의료기관, 약국, 도매상 등 거래처가 주문하지 않은 의약품을 보내는 방식이다.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월말 또는 분기말에 밀어넣기 행태는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다만 식품회사가 ‘갑’의 위치에서 거래처에 판매를 강요하는 것과는 달리 제약사는 ‘을’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통상 영업사원이 평소에 친분이 각별한 약국에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월말에 의약품을 발송한다. 의료기관에는 수액제나 주사제를 다량 보내면서 실적을 맞춘다.

도매상과 거래하는 영업사원은 밀어넣기 규모가 더욱 커진다. 목표 매출보다 실적이 많이 부족할 경우 회사 차원에서 대형 도매상에 의약품을 대량으로 보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가격이 비싸고 부피가 작은 전문의약품이 ‘밀어넣기’ 대상으로 선호된다.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약을 보내는 ‘불량 영업사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업체마다 유사한 제품을 보유한 의약품 시장 특성상 자칫 약국 등과 갈등이 발생하면 거래 자체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영업사원의 강매는 있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매출의 10% 가량은 밀어넣기 영업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정도로 이같은 영업 행태는 고질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문제는 밀어넣기 영업에 따른 의약품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다. 일부 제품은 약국이나 도매상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판매되지만 영업사원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판매하는 양도 적지 않다. 이때 자칫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약사와 약국간의 거래에서는 수금액의 일정 부분을 되돌려주는 비용할인 관행이 있는데, 무리한 밀어넣기 영업으로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약국이 보관하는 거래잔고와 회사의 잔고가 차액이 발생하는 현상도 흔히 펼쳐진다. 제약사 내부 감사 결과 거래처의 잔고 차액이 수억원에 달해 영업사원이 징계를 받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이유다.

상당수 제품은 영업사원이 직접 보관하다 회사에 반품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이들 제품은 사용기한 등을 이유로 다시 출하할 수 없기 때문에 매년 적잖은 비용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의약품의 대량 폐기에 따른 환경 오염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지난해 일괄 약가인하로 매출 손실이 불가피했음에도 일부 제약사는 영업사원들에게 무리한 실적을 요구하면서 최근에 이러한 밀어넣기 영업은 더욱 횡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밀어넣기 영업 관행에 따라 개봉도 하지 않은 의약품의 폐기량이 업체마다 많게는 연간 수백억원 규모에 달한다”면서 “끊임없이 반품되는 의약품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