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용철 기자
2005.10.18 18:25:46
[이데일리 조용철기자] `정치적 중립`이 이렇게 현실감있게 다가온게 참 오랜만입니다. 최고 권력기관중 하나인 검찰의 수장이 이 때문에 교체됐습니다. 그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수용하는 대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이 그렇게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경제부에서 검찰 출입을 맡고 있는 조용철 기자의 느낌입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가치". 김종빈 검찰총장이 이 결연한 말을 남기고 6개월여의 짧은 재임 기간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17일 검찰청을 떠나는 모습은 처연했습니다.
김 전 총장은 퇴임식에서 밝힌 퇴임사에서는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습니다. "구체적 수사 지휘권이 행사된 순간 그동안 쌓아온 (검찰의)정치적 중립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은 어떤 일이 있어도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검찰을 평가할 때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검찰`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는데 그 이유가 검찰이 정치에 흔들렸기 때문"이라며 "검찰은 자성한다는 의미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재삼 `정치적 중립`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검찰은 김 전총장이 할말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일단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 하나 물러난 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집단행동을 하지 말아달라"는 김 전 총장의 간곡한 당부도 기여했습니다.
사실 검찰이 이를 두고 집단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을 또다시 급변했을 것입니다.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형사소송법 개정,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등 여러 중요한 현안을 앞두고 검찰이 자칫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 `저런다`식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김 전 총장이 당부한 대로, 국민은 정치권력의 수사 개입이나 외압에 굴복하는 검찰을 바라지 않습니다. 검찰이 정치권 등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어떤 영향도 없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가 이뤄져야 하고, 그래야만 국민은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김 전 총장의 사퇴는 검찰 구성원들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습니다. 또 중립성을 침해받을 우려가 언제라도 있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시켰습니다.
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었기 때문에 당선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바로 그 `시대정신`은 바로 `탈권위, 탈권력`이었습니다.
이같은 시대정신의 연장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도 `검찰도 시대정신에 따라야 한다`며 강정구 동국대 교수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천 장관은 사실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2001년, 참여연대가 법무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삭제한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소개하는데 찬성해 불과 4년만에 변한 `소신`의 가벼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검찰의 권력 남용은 견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올바른 통제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그리고 국회와 국민등이 골고루 통제의 주체가 되어서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절실한 것은 정치권의 검찰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검찰개혁이 `정치권의 검찰 길들이기`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 전 총장은 "역대 법무장관들이 수사지휘권 행사를 자제한 것은 규정의 존재 자체로 상징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을 행사하면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전 총장의 이 말은 법대 학부생 수준의 아주 원론적이고 당연한 말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말이 서초동 법조 마을에 계속 메아리로 맴돌고있습니다. 그리고 `총장직을 거는 검찰총장이 5명은 나와야 한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의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