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이재용 시대 본격 개막…AI 등 미래 성장동력 육성 총력

by신민준 기자
2020.10.25 16:31:37

국내외 현안 해결과 조직 안정화 후 회장직 승계 논의할 듯
반도체 초격차 유지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 위주 사업재편 진행
최근 네덜란드·베트남 등 반도체·스마트폰 해외 현장 경영 잇따라
다음 방문지 5G요충지 日언급…연내 모든 스마트기기에 AI기술 적용

[이데일리 신민준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그룹 총수로 삼성그룹을 이끌어온 만큼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뉴 삼성’으로의 변화를 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전장부품 △바이오 등을 뉴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육성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20~21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의 별세로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쓰러진 뒤 이 회장이 맡았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는 등 실질적인 후계자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통해 공식적인 총수 자리에 올랐다.

현재 이 부회장은 국내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부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도 미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삼성 회장직을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사법리스크 등 각종 국내외 현안이 쌓여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은 한동안 조직을 추스르고 경영 안정을 꾀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그룹은 아직 이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하는 방안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그룹 안팎에서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경영 능력을 인정 받고 있어 회장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리더십에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유고 기간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부문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동력 위주의 사업구조 재편을 진행해왔다.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 매각과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2030년까지 연구개발(R&D) 분야에 73조원,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단일사업 투자규모로 역대 최대다.



이 부회장의 사업구조 재편 효과는 실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연결기준 매출 66조원, 영업이익 12조3000억원의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미래 성장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최근 이 부회장의 행보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네덜란드와 스위스를 방문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기업인 ASML을 방문했다. EUV노광기술은 극자외선 광원을 사용해 반도체의 원료인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노 단위의 반도체는 AI·5G장비, 자율주행 자동차에 활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피터 버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ASML 방문 직후인 지난 19일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현지 사업장 점검과 베트남 총리 면담 등 해외 일정을 마친 뒤 지난 23일 귀국했다. 베트남 현지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가전제품 생산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하노이에 삼성 베트남 연구개발 센터가 건립되고 있다. 베트남 일정을 마친 이 부회장은 다음 해외 방문 행선지로 일본을 언급했다. 일본은 5G 통신장비 시장개척을 위한 요충지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NTT도코모, KDDI 등 일본 양대 통신사 경영진을 직접 만나 5G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일본 2위 통신사인 KDDI에 수주 금액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달하는 5G 기지국 장비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 부회장은 AI 기술 경쟁력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한국과 미국, 영국 등 다섯 국가에 AI 연구센터를 구축해 전 세계에서 우수한 AI 연구인력을 1000명 이상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연내 모든 스마트 기기에 AI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산업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오는 29일 미국 샌프란스시스코에 위탁개발(CDO) 연구개발센터를 열고 세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향후 삼성의 주력사업이 어떤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며 “이는 이재용의 뉴삼성이 자리잡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