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 전신주 관리 소홀 한전 직원들, 무죄 확정
by박정수 기자
2023.10.18 10:55:21
전·현직 한전 직원 7명 업무상실화 혐의로 기소
전신주 고압전선 끊어져 불꽃 발생…대형산불 이어져
檢 “업무상 주의의무 소홀” vs 변호인 “자연재해”
1·2심 이어 대법도 ‘증거부족’ 무죄…“형사책임 묻기 어려워”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강원 고성산불 사건과 관련해 전신주 관리 소홀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한전 직원들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 지난 2019년 4월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이 연기를 피해 차량 뒤에서 대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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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업무상실화 등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한전 직원 7명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19년 4월 4일 오후 7시17분경 강원 고성군에 있는 주유소의 건너편 도로변에 설치된 척산간 제158호 전신주의 끊어진 전선에서 전기불꽃(아크)이 발생했고, 아크의 불티가 전신주 밑에 있던 마른 낙엽 등에 착화했다.
이후 착화된 불이 강풍을 통해 번지면서 강원도 고성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소실된 산림은 1260㏊ 규모로 축구장 면적(0.714㏊) 1700배가 넘는다.
척산간 제158호 전신주 부하측 B상은 한전 속초지사의 총체적인 배전선로 부실관리로 유지력이 기준치에 현저하게 미달하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주전선 쪽에서 발생한 인장력과 바람에 의한 진동을 데드엔드클램프(배전선로에 전선을 붙들어 놓기 위해 사용하는 금속 장치)가 차단하지 못한 채 인출부의 전선 쪽에 전달되게 했으며, 과도한 인장력과 진동이 데드엔드클램프 내부에 있는 전선이 꺾인 부분에 반복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마모 피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산불 발생 당시 한국전력공사 속초지사에 근무하고 있었던 피고인들은 전신주 하자를 방치한 공동 과실로 899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와 산림 1260㏊ 소실, 주민 2명에게 약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전·현직 한전 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이 이 사건 S상(부하측 B상이라고도 함) 데드엔드클램프에 스프링와셔가 체결되지 않았던 설치상 하자를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업무상 과실이 있었다거나 그로 인해 전선이 끊어져 이 사건 산불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한전 측 과실로 인정했던 스프링와셔 시공 하자를 재차 언급하며 하자와 산불 간 인과 관계가 있음을 주장하며 항소했다. 또 동해안에 매년 국지적 강풍이 부는 점을 고려하면 전선 관리 업무가 필요하다는 점이 도출된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당시 속초지사장과 간부급 직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직원 2명에게는 징역 1년, 나머지 3명에게는 벌금 300만원 또는 500만원을 각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법리적 측면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 사건은 예상 불가능한 강풍으로 인한 자연재해적 성격”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2심 재판부도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한전 내부지침과 관련 자료, 전문가들의 진술과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과 2심 법정에서 전문가들은 ‘시공 당시부터 이미 이 사건 전신주 S상 데드엔드클램프의 인출 각도를 꺾어놓았을 수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고, 전문가들조차도 이 사건 전신주 데드엔드클램프로부터 나오는 전선의 90도 꺾임 현상이 하자인지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심 재판부는 “내부지침에 없는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을 물으려면 일반적인 관점에서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게 합리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업무상실화죄, 업무상과실치상죄, 산림보호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