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폭행 뒤 심근경색 사망…대법, 폭행치사 불인정
by성주원 기자
2025.03.12 09:33:26
운전 시비로 몸싸움…쓰러져 병원이송 뒤 사망
"폭행치사죄는 예견가능성 있어야" 폭행만 인정
1·2심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대법원, 원심확정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고속도로 상에서 시비 끝에 폭행을 가해 피해자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가해자에 대해 ‘폭행치사’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 ‘폭행’만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형법상 결과적 가중범의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폭행치사죄가 성립하려면 폭행행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망의 결과가 예견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사진=미드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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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60대 남성 A씨의 폭행치사 혐의 사건 상고심에서 “원심의 판단에 폭행치사죄의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12일 밝혔다.
2023년 7월 22일 오전 6시 32분경, A씨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피해자 B씨(당시 41세)의 승용차 앞으로 끼어들었다가 시비가 붙었다. 두 사람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하차했고, A씨는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로 들이받는 등 폭행을 가했다.
몸싸움 끝에 A씨는 B씨를 도로변 화단으로 넘어뜨리고 몸 위에 올라타 가슴을 누르기도 했다. 싸움이 끝난 후 B씨는 도로로 걸어나오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전 7시 52분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B씨의 사인은 ‘죽상경화성 심장병에 따른 급성심근경색’으로 판단됐다”며 “B씨는 상당한 정도의 죽상경화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나, 이전까지 관련 진료를 받은 적이 없었고 가족도 건강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B씨와 처음 만난 사이로, B씨에게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며 “A씨의 폭행 정도가 경미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사망을 초래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의 폭행치사 혐의는 무죄로 보고, 폭행 혐의만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2심도 “피고인의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되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폭행치사죄는 결과적 가중범으로서 폭행과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외에 사망의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강하게 누른 행위가 피해자의 심장질환을 촉발시켰을 수 있으나, 피해자의 심장질환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짧은 순간 누르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사망을 예견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생각도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폭행치사죄의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폭행이 신체에 직접 가해진 것이 아니거나(삿대질을 한 경우 등) 그 정도가 극히 경미한 경우(뺨을 살짝 때리거나 멱살을 잡은 데 불과한 경우 등)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의 지병(또는 특이체질)이 악화돼 사망했으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지병(특이체질)이 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경우에는 예견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