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우석훈 기자
2011.10.20 16:32:02
[이데일리 우석훈 칼럼니스트] 얼마 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어렵고 따분한 제목의 책이 한국을 강타한 적이 있다. 그의 스승에 해당하는 존 롤스가 신계약론 혹은 정의론의 원조다.
롤스의 정의론은, 유아들의 영혼들이 과연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태어날 사회를 결정할 것인가, 그런 간단한 질문 위에 서 있다. 자신이 누구의 육체로 태어날지 모르는 아이들의 영혼이 계약을 한다면? 이 때에는 자신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계약을 할 것이라는 게 롤스의 생각이고, 최소조건을 최대화시키는 ‘맥스-민’이라는 기준이 여기에서 나왔다.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는 논쟁을 보면서, 나는 정의론을 다시 한 번 머리에 떠올렸다. 민주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어차피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철학이나 사회학이나 혹은 그 어떤 보편적인 사회과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냥 한국의 극우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반북과 반공에서 찾기 위해서 급조해낸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교과서에 어떻게든 밀어넣고 싶다는 그 소망을 보면서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저 사람들이 다시 태아의 영혼이 돼서 어디든지 자신이 태어날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때에도 자신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굳이 다시 태어나려고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07년 클라이맥스에 오를 때까지 한국에는 3만명의 조기유학생들이 있었다.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서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만 8000명 정도의 조기유학생들이 있다. 좀 야박하게 얘기하면 이 수치가 대체적으로 자신의 2세에게는 한국이 아닌 다른 조국을 주고 싶다는 엘리트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식에게 미국을 조국으로 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장사는 몰라도 공직에 나서거나 선출직 정치인이 돼 우리들의 지도자가 되는 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미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끌고 가고자 했던 건 지난 10년간 뉴욕스타일(?)이었다. 금융화, 메가뱅크, 노동유연화 같은 소소한 문제에서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생각한 ‘선진화’는 세계화 그리고 정확히는 미국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일중독 변호사인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라는 유럽 탐방기는 이런 우리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유럽 사람들은 미국보다 6주 더 많이 논다. 그렇지만 1인당 GDP의 경우, 프랑스나 독일 등은 미국과 비슷하고 스웨덴, 스위스 같은 나라는 6만불을 넘었다. 북해산 석유의 도움을 받은 노르웨이는 숫제 9만불을 넘는다. 물론 "석유 때문에 덕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석유가 많은 이란, 이라크, 베네주엘라 등은 왜 선진국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유럽 복지 국가의 의료보험이나 연금 등 여러 가지 제도는 미국보다 낫고, 중산층의 삶도 이제는 유럽이 더 평온하다는 얘기는 다큐 <식코> 등 다양한 통로로 알려진 바 있어 이제는 상식이 됐고 식상하다시피한 얘기다. 그러나 제조업을 하기에도 유럽이 낫고 창업을 하기에도 유럽이 낫다는 얘기는 경제학자 아니면 잘 모르는 내용들이다.
제조업이 무너지고 결국 이공계가 무너지고, 그 대신 금융으로 가자고 했다는 일중독자 ‘얼리 버드’들의 지난 10년간의 한국 운용.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이 책 한 권과 함께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을 듯 싶다.
참, 내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찍어놓은 도시가 취리히였는데 토머스 게이건도 취리히에 방문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으로 첫 페이지를 시작했다. 봐, 내가 한 얘기가 맞쟎아, 그런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취리히는 스위스의 독일어권 중심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