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원 질렀다가 실패하면 증발…게임 기업 성장의 뒷그늘

by이대호 기자
2021.03.07 19:23:56

‘재료 모으고, 뽑고 또 뽑는’ 이중 삼중 확률형 아이템 논란
억대 추정 아이템 완성 과정 두고 ‘이렇게까지’ 비판 제기
기업 덩치 커지면서 이용자 불만 늘어…현행 자율규제 부족 지적
“정보 비대칭성 해소해야…청소년 판매 금지까지도 갈 수 있어”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이대호 기자] 게임 유튜브 방송을 보면 ‘따라 하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확률형 뽑기 게임 아이템 방송이다. 이용자 간 경쟁을 앞세운 몇몇 유명 게임은 상위 이용자가 아이템 재료 합성과 강화 시 수십 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재화가 소요된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노릴수록, 확률 강화에 걸어야 할 재화 규모가 커지고 실패 확률도 높아진다. 아이템 강화 실패 시엔 재화가 증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 그대로 공중분해다. 그동안 이용자가 들인 노력과 비용이 무위로 돌아간다. 이 같은 폐해 때문에 유튜브 방송인들이 경고 문구를 띄우고 있다.

확률형 뽑기 아이템은 게임 내 보물 상자를 구매하는 유료 결제 상품이다. 이용자가 보물 상자를 열기 전까지 무슨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게임사가 정한 확률 표에 근거해 일반 아이템부터 영웅, 전설 등으로 불리는 희귀 아이템이 나온다. 당연히 이용자들은 높은 가치를 지닌 희귀 아이템을 바란다. 이 같은 요행 심리를 노린 수익모델(BM)이 바로 ‘확률형 게임 아이템’이다. 이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합성하는 과정에도 확률 표에 따라 성공 여부가 나뉜다. 이 때문에 ‘사행성이 짙다’, ‘도박 아니냐?’라는 비판이 수시로 따라붙는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게임 내 아이템과 유·무료 재료를 수집한 뒤 이중 삼중 확률 뽑기와 합성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 아이템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최근 시중에서 억대 거래액으로 추정돼 눈길을 끈 무기 아이템이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아이템은 뽑기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템을 뽑고 재료를 모아 결합한 뒤 확률 뽑기를 하는 과정을 재차 삼차 거쳐야 한다. 이용자가 중간 과정에서 그만둔다면 그전에 들어간 노력과 비용은 사실상 제로(0)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용자 일부는 매몰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뽑기와 재료 모으기를 계속 이어가는 상황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페이 투 윈(Pay to Win)’ 게임 설계와 결합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페이 투 윈은 승리를 위해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과금 설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돈을 쓰면 내 캐릭터가 강해진다. 게임 기업의 매출 확보를 위해선 일정 부분 필요한 장치이나, 국내 이용자들은 이 같은 과금 유도 설계가 과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중 삼중 뽑기 아이템은 뽑기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논란이 일어나 금지한 상품이다. ‘컴플리트 가챠’로 불린다. 가챠(がちゃ)는 동전을 넣고 뽑기 기계를 돌릴 때 ‘철컥’하는 소리에서 파생한 의성어다. 컴플리트 가챠는 특정 조건에 맞는 종류별 상품을 모아 빙고판을 완성하면 더 좋은 상품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 판매 방식이다. 이 방식이 모바일게임으로 들어와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16년 일본 온라인게임협회(JOGA)가 자율규제로 이 같은 상품 판매를 금지했고 이후 과징금을 매기는 경품표시법도 시행된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컴플리트 가챠로 볼만한 상품이 성행하고 있다. 게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상품은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게임협회) 자율규제도 우회한다. 현행 자율규제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에 한정해 확률 정보 공개를 권장하고 있다. 이 경우 게임 내 무료로도 얻을 수 있는 재화와 결합할 시 확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고도화된 이중 삼중 뽑기에선 유·무료 재화 결합도 적지 않다. 이용자 입장에선 얼마나 돈을 들여야 아이템을 완성할지 가늠할 수 없어 불만이 커지고 있다.

확률형 게임 아이템은 국내 게임 기업 매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매출의 90%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정액 게임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뽑기가 아닌 단품이 정해진 확정형 아이템의 판매 비중은 작다. 게임 유통권을 넘기고 받는 로열티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매출이 사실상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게임 빅3로 불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의 2020년 매출 총합은 8조 원이 넘는다. 이 중 엔씨소프트가 내수에서 가장 탄탄한 입지를 갖췄다. 엔씨소프트 지난해 벌어들인 국내 매출만 2조 원 가량이다. 리니지M·2M 매출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억대 추정 거래가격의 무기 아이템이 리니지2M에서 나왔다. 해당 게임을 즐기는 한 유튜브 방송인은 여러 차례 희박한 합성 확률 통과한 뒤 무기를 완성하게 만든 과정을 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게임협회는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법제화를 반대하고 있다. 자율적인 현행 확률 공개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다. 국회가 폭넓은 범위의 확률 정보 공개에 팔을 걷어붙였고 이용자들도 지지하면서 난관을 맞닥뜨렸다.

넥슨이 확률 정보 공개라는 강수를 둔 지난 5일, 수집형 뽑기를 금지하는 법안도 나왔다. 유동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했다. 현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가 자율규제 강령 개정을 준비 중이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소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자율규제는 학자들도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법률 규제보다는 자율규제에 힘을 싣는 이승민 교수(성균관대)도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며 “업계 스스로 공개범위를 넓히고 통계를 보고 제도적 뒷받침도 해주는 자율규제가 맞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냈다. 강성 발언으로 유명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컴플리트 가챠는 게임법 통과 여부를 떠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것”이라며 “다음엔 확률형 아이템의 청소년 판매 금지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