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美경제 바닥 쳤나…"나이키형 회복" Vs "L자형 침체"

by이준기 기자
2020.05.10 20:21:41

'나이키형' 부각 속 '낙관적' 지적도…정부·연준 '돈 더 부어야'
향후 美 '재정 위기' 우려 키울 수도…'증세' 불가피론 가능성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경제의 궁극적인 반등이 얼마나 강력할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소위 ‘V’자 형태의 가파른 반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최근 들어 ‘나이키형’ 반등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곡선의 꼬리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모양인 나이키형은 뚜렷하진 않아도 안정적·점진적인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이마저도 추가적인 ‘부양’이 지속돼야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부채다. ‘증세 불가피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V’자 형이나 나이키 형 외에도 느리지만 뚜렷한 성장인 ‘U’자 형이나 장기침체를 뜻하는 ‘L’자 형, 경기가 잠시 살아났다가 다시 주저앉은 더블 딥(이중 침체)의 ‘W’자 형, 최악의 시나리오인 ‘I’자 형 등 전문가마다 코로나19 후 경기 반등을 예측하는 목소리를 각양각색이다. 이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나이키형은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코로나19발(發) 위기 회복도 금융위기 이후와 비슷한 모습을 그릴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CUNA 뮤추얼 그룹의 스티브 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에도 길고 꾸준한 회복, 즉 나이키 로고인 ‘스우시’(Swoosh) 모양이 될 공산이 크다”고 했다.

한편에선 3300만명에 달하는 실직 사태, 40%대의 역성장이 확실시되는 2분기 성장률 등을 고려했을 때 나이키형 반등 역시 지나친 ‘낙관적’ 시각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매튜 미스킨 존 핸콕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투자전략가 “소비자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경기 회복은 더욱 짓눌릴 것”이라며 “앞으로 몇 분기 동안 미 경제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핸콕 전략가는 반등의 최대 방해 요인으로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을 꼽았다.

이미 ‘역대급’ 부양에 나선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트럼프 행정부가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최소한 나이키형 반등을 이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국적 회계법인 RSM의 조지프 브루스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나이키 스우시처럼 보이는 회복의 밑바탕에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이 깔려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낙관론의 시발점은 ‘주식시장’이다. 실물경제의 파탄 속에서도 지난 4월 33년만의 ‘최고의 한 달’을 보낸 뉴욕증시는 5월 들어서도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찰스슈왑의 랜디 프레드릭 트레이딩 담당 부대표는 “시장은 6개월 이후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시장의 관측이 꼭 들어맞을 것이란 법은 없다”고 했다. 특히 어떤 형태를 띠든 경기 반등의 과정은 지난(至難)할 수밖에 없다. 레이몬드 제임스 앤 어소시어츠의 래리 애덤 최고투자책임자(CIO) CNN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반등 과정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많을 것”이라고 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회복의 형태는 울퉁불퉁할 것”이라고 했다.



브루스엘라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처럼 나이키형 회복이 이뤄지려면 강력한 재정 및 통화 정책은 더 뒤따라야 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재정적자는 중대한 문제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데 방해가 돼선 안 된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를 향해 ‘돈을 더 풀라’고 압박한 것도 향후 극적인 경기반등을 꾀하기 위해서로 봐야 한다.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의 스티븐 오 신용·채권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재정 부양은 제2의 불황을 피하기 위해 절대적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미 미국이 이미 엄청난 빚더미를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전부터 ‘호황’을 이어가기 위해 막대한 감세 및 재정지출 등을 통해 빚을 불려 왔다. 코로나19 이후 4차례의 대규모 부양을 비롯해 락다운(봉쇄·lockdown)과 이로 인한 3350만명의 실직 사태 등으로 세수가 줄어든 점도 한몫했다. 미 의회예상정책처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적자 규모는 2019년 1조달러에서 올해 3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향후 2조달러 규모의 5번째 부양책이 이뤄지면 적자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더 늘어난다.

무디스는 코로나19 사태 전 미국 국가부채가 2030년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지금은 GDP의 128%에 이를 것으로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재정적자 감축을 지지하는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의 마야 맥귀니스 대표는 “미국 경제가 좋을 때마저 빚을 늘린 건 큰 실수였다”고 했다.

최대 관건은 제아무리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라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빚’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서면 증세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니콜라스 블룸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는 “증세는 향후 불가피해 보이지만, 서두를 경우 경기반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