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실험 중단에도 우려 여전... NPT 복귀로 비핵화 공식화 필요

by김영환 기자
2018.04.22 17:39:48

연이은 정상회담 앞두고 긍정적 시그널 해석 우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 제기..CVID와는 거리 멀어
비핵화 의지 확인 위해서는 NPT 복귀 및 IAEA 사찰 의지 봐야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월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하면서 이를 두고 국제 사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비핵화 액션을 취하고도 번복해온 북한이 이번에는 어떤 의중을 갖고 이 같은 조치를 취했는지에 의견이 엇갈린다.

북한의 이례적인 발표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단은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결정을 환영한다”며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논평했다.

미국 역시 발빠르게 입장을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발표가 나온 지 한 시간여 만에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소식은 매우 좋은 뉴스이고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환영했다. 북·미 접촉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마이크 폼페이오 방북에 따른 북미 간 사전협의 반영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봤다.

이와 함께 6자회담 국가들도 일제히 북한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했고 러시아 외무부는 “긴장 완화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정치적 대사건’이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 역시 ‘깜짝 발표’라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신중론도 제기된다. 핵실험이나 ICBM 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쇄는 북한이 쉽게 되돌릴 수 있는 행동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이 이번에 폐쇄하기로 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6번의 핵실험을 끝에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근처 주민들이 피폭됐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미 수명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핵실험 중단이나 ICBM 실험 중단 역시 북한이 회담이 실패할 경우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종착역으로 보고 있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영변 핵사찰을 주도했던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핵실험장 폐쇄가 아니라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폐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지만 8년만인 1993년 NPT를 탈퇴하면서 핵무기 개발에 매진했다. 1994년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통해 복귀했지만 2003년 또다시 NPT를 탈퇴했다. 지난 2008년 6월에는 북핵 개발의 상징이던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번 핵실험장 폐쇄조치는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보다도 비핵화 과정 중 앞선 단계다. 핵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시설과 이미 만들어진 핵물질 및 핵탄두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한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북한이 이번 선언을 발판으로 국제적인 핵실험 금지조약의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의 핵실험 중단 선언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이와 함께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사찰을 받아 핵탄두와 핵물질을 은닉한 지하 시설을 공개하는 후속 조치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스스로를 ‘핵강국’으로 간주하는 것과 향후 비핵화 협상이 모순되지 않는다.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비핵화 문제를 한국과 미국이 협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