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재호 기자
2014.07.15 12:34:00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의 정치이력이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14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통해 또 한 번 거대여당의 최고위원에 올랐다.
이인제 의원의 별명은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와 자신의 이름을 합한 ‘피닉제’로 잘 알려져 있다.
전날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의 화려한 재등장으로 언론과 국민들은 그의 정치이력에 ‘고래심줄’이라는 표현을 하나 더 붙이는 모양새다.
고래심줄의 사전적 의미는 고래힘줄처럼 상당히 질진 끈을 일컫는 말로 나와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가 걸어온 정치인생을 되돌아보면 고래심줄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인제 의원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에는 유신반대 민주화 운동을 앞장서기도 했다.
이후 대전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고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3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 1988년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청문위원으로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국감 스타로 떠올랐다. 1993년 문민정부출범과 함께 최연소 노동부 장관, 민선 경기지사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순탄하던 그의 정치이력에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 때는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경선에 불복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도전한 시점부터다.
그해 대선에서 500여만표를 획득, 잠재력을 과시했으나 ‘경선불복’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에는 새천년민주당에 둥지를 틀었고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2007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다시 출마하는 집념을 보였다.
정당의 이합집산도 있었지만 정치인생 20여 년간 ‘통일민주당-민주당-신한국당-국민신당-새천년민주당-자민련-국민중심당-민주당-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진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의 정치이력은 ‘철새’처럼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입당·탈당·복당을 반복해왔지만 생명력만큼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고 고래심줄과 같이 질겼던 게 틀림없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는 몇 해 전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피닉제라는 표현에 대해 “아주 과분한 별명을 붙여줘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피닉제에 이어 좋은 의미에서의 고래심줄이라는 표현이 더해졌다. 이인제 의원의 정치인생은 또 한 번 전환기를 맞으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