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마이뉴스 기자
2006.01.10 15:28:59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조기 경제교육
[오마이뉴스 제공]"느그들이 정신이 있냐? 없냐? 지금 돼지들이 배고파 죽겠다는데, 밥풀이 하수도에 떠내려가면 되것냐?"
아버지는 설거지를 하던 내게 벼락같이 고함을 치셨다. 초등학생 어린 것이 설거지를 하다 웃물만 버리고 밑에 가라앉은 물은 돼지 구정물통에 부으려고 하다 그만 몇 알의 밥찌꺼기가 하수도를 타고 흘러 떠내려간 걸 아버지가 멀찌감치 보신 거다.
"너 저녁밥 먹지 말고 니 밥은 돼지 줘라."
밥알 몇 알 떠내려 보냈다는 이유로 아버진 어린 내게 저녁밥을 굶으라며 호통을 치셨다. 그때는 그 말씀이 왜 그리도 서운하던지.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 당시 아버지 이마의 주름살 같은 천수답 다랑지 논 두어 마지기를 짓던 우리 집엔 식구가 아홉 명이나 됐으니 정말 꽁보리밥도 배곯지 않고 먹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 전기는 얼마나 아꼈던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가,
"전기 불 빨리 꺼라."
"전기세를 지리산 중이 대신 내 준다더냐?"
집이 지리산 턱밑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지리산 중은 시주 돈이 많이 들어왔는지 꼭 돈 얘기 앞에 아버지는 지리산 중을 들먹였다. 실수로 화장실에라도 갔다가 불을 안 끄고 나오는 경우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었다. 정말 나는 커서 아버지처럼 안 살겠다고 했는데, 내 자식들에게는 물과 전기를 맘껏 쓰라고 싶었는데… 나도 영락없이 그 아버지의 그 딸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세숫물도 대야에 곡용 2리터쯤 가지고 세수를 하셨다.
"아부지… 두레박으로 푸면 되는 물을 고렇게 쬐끔 가지고 세수를 하요?"
"야~ 야 한 바가지만 더 있으먼 멱도 감것다."
"아부지! 아무리 퍼 써도 날마다 펑펑 솟아나는 물을 뭣하게 애낀다요?"
그렇게 딸들과 아버지 사이엔 입씨름이 오갔다. 요즘 딸아이와 난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전쟁 중이다.
"엄마! 엄마는 그 옛날 못 살던 얘기를 요즘 디지털 세대에게 하면 어떻게 해?"
"그래. 디지털 세대들은 물이고 전기고 펑펑 써도 된다더냐? 전기세랑 수도세랑 지리산 중이 대신 물어 준다더냐?"
"아니… 엄마는 왕소금처럼 짠돌이잖아?"
우리 집 6학년 딸과 내가 매일 하는 얘기의 대부분이다. 정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와 남편은 절약이 몸에 배어서 이젠 아무리 구세대 습성을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다.
그 옛날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깨우치면서 전기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일 아이들에게 전기 불 아끼라는 말을 입에 달며 살고 있다. 우리들 어려서 화장실엔 5W짜리 고추 전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희미한 전구 불빛에 의지하며 재래식 화장실에서 일을 봤는데, 요즘 아이들 전기불은 벌건 대낮처럼 밝히며 물은 흥청망청 마구 쓰는 것에 남편은 쌍심지 켜며 아이들에게 말을 한다.
"거실 불이 켜져 있을 때는 화장실 불 안 켜도 일 볼 수 있지 않냐?"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휴지도 돌돌돌 풀어쓰는 것을 보지 못 한다.
"이것도 다 돈이다. 아껴야 잘 산다."
그렇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전혀 틀리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에겐 무노동 용돈이 없다. 아빠에게 안마를 하든지 구두를 닦든지 해야 용돈이 주어진다. 딸아이는 일요일 재활용품을 버릴 경우 500원의 용돈이 주어진다. 우리 집 아이들 학용품은 직접 대형 마트나 문구점에서 사다 놓는다.
모든 학용품은 견출지에 이름을 써서 붙여 주고, 남들에게 하찮을지 모를 연필 한 자루도 내 아이들이 소홀하게 다루지 말고 내 물건은 꼭 챙겨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줬다. 노트도 한 권을 다 써야 새 것을 내 주고, 연필도 몽당연필이 되면 조그마한 상자에 넣어두고 작은아이에게 쓰도록 한다. 손이 조막만 해서 아직은 잡는데 별 문제가 없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도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 용돈도 자기들 마음대로 쓰는 경우는 없고 다 어디에 썼는지 선 결제는 못 받아도 사후 보고를 한다. 친척들이나 아빠친구들한테 받은 만 원 짜리는 감히 쓸 엄두를 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만져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바로 통장으로 들어가 버린다. 두 아이는 서로 자기들 통장을 비교하며 숫자 불어나는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가끔 딸아이는 내게 묻는다.
"엄마! 나는 언제쯤 만 원 짜리를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중학생 때쯤 되면 가능 할 거다."
"엄마! 나는 언제쯤 휴대폰 사줄 거야?"
"너 휴대폰으로 돈 벌 거니? 그렇지 않으면 필요 없잖아? 남들 가졌다고 필요 없는 걸 사는 것도 낭비야."
난 아직까지 두 아이들 머리를 직접 잘라준다. 이젠 커서 집에서 자르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10여분만 자르면 돈 오천 원을 버는데, 조금만 참자" 하며 머리를 잘라준다.
20여 년 전 누군가 앞으로 물을 사 먹는 시절이 올 거라 했을 때 다들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데 몇 년 걸리지 않았다. 경제교육은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시켜야 한다.
1억 원도 단돈 10원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깨우쳐야 하고, 버스를 탈 때 10원이라도 부족하면 못 탄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일러줘야 한다. 요즘 길바닥에 떨어진 10원짜리는 아이들도 줍지 않는다는데, 난 아이들에게 직접 주으라고 한다. 10원도 분명 돈이고, 100만원에서 10원이 부족하면 분명 부족한 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너희들 온 종일 땅을 파 봐라. 10원이 나오는지…" 하면서 10원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건물이 튼튼하려면 기초공사가 잘 다져져야 한다. 부실한 기초공사 위에 좋고 멋있는 건물을 지었을 경우 그 건물이 오래 가는지. 어린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훗날 어떠한 시련과 고초에도 잘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사람이 되는 거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부잣집 아이들이 흥청망청 쓰다가 부모 돌아가시고 그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걸 봤다. 난 결혼 전부터 가계부를 쓰고 15일쯤 중간 계산을 하고 월말이면 주산으로 월말통계를 내며 허튼 곳에 쓴 게 없나 또 한 번 훑어본다. 돈을 꼭 써야 할 때는 써야 하지만, 물과 전기 등은 아무리 귀가 아프도록 아끼라는 말을 많이 해도 해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