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자리 꿰찬 저유황유, 천덕꾸러기 신세 벗었다

by경계영 기자
2022.01.20 11:17:01

초저유황선박유 가격, 전년 대비 50%↑
천연가스 강세에 난방·발전 등 대체재 부상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찬밥 취급 받던 저유황유의 몸값이 크게 높아졌다.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저유황유가 난방·발전용으로 쓰이던 천연가스의 자리를 대체하면서다.

20일 캐나다 선박유 가격 정보업체 십앤드벙커(Ship and Bunker)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세계 주요 20개 항구에서의 초저유황선박유(VLSFO) 평균 가격은 톤(t)당 676.0달러로 450달러대를 맴돌던 1년 전보다 50%가량 올랐다.

초저유황선박유는 ‘국제해사기구(IMO) 2020’ 규제에 맞춰 황 함유량을 종전 3.5%에서 0.5%로 낮춘 선박 연료유를 말한다. 초저유황선박유는 2020년 1월7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 t당 692.50달러에 근접했다. 지난 2020년 4월28일 기록한 최저치 211.25달러에 비해 220% 뛴 수준이기도 하다.

초저유황선박유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황 함유량이 더 높은 고유황유와의 가격 격차도 139.5달러로 벌어졌다. 저유황유는 중질유에서 황 함량을 줄이는 설비를 더 거쳐야 하다 보니 종전 선박유로 활용되던 고유황유보다 가격이 더 높다. 특히 싱가포르 기준 저유황유와 고유황유 간 가격 격차는 196달러로 2020년 초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SK이노베이션 정유사업 자회사 SK에너지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세계 주요 20개 항구의 초저유황선박유 평균 가격. 단위=t당 달러, 자료=십앤드벙커
당초 저유황유는 정유사의 새 먹거리로 꼽혔다. 선박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IMO 2020을 앞두고 현대오일뱅크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박용 저유황유 전용 생산설비를 구축한 데 이어 선박 연료 브랜드 ‘현대스타’(HYUNDAI STAR)를 출시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1조원을 들여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짓고 에쓰오일(S-OIL(010950))도 잔사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설비를 증설했다.

2020년 상반기까지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에 발목 잡혀 가격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저유황유가 반전을 꾀할 수 있던 계기는 천연가스 때문이었다. 북반구에 한파가 불어닥친 데다 석탄 관련 대체 수요 등까지 겹치며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그 자리를 저유황유가 대체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VRDS를 완전 가동하는 등 관련 설비 가동률도 회복됐다.

업계 관계자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유황유가 발전용 연료나 난방유 등에 투입되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저유황유 마진이 개선되고 있다”며 “LNG 가격 강세가 유지될수록 저유황유 마진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 이슈가 있다 보니 정유부문에 대규모로 투자하긴 쉽지 않다”며 “저유황유 수요가 받쳐주는 데 비해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저유황유 가격이 상향 안정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