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학선 기자
2013.02.26 14:28:01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신세계(004170)와 이마트(139480) 등기이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기존 사업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정 부회장은 신성장동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신세계는 이를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했다. 정 부회장이 이사회에서 빠지면 전문경영인의 활동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신세계는 이 구상을 지난 2011년 신세계와 이마트를 분할할 때부터 논의해왔고, 최근의 검찰조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너가 법률적 책임을 져야하는 등기이사 자리에선 빠지고 그렇다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도 아닌 어색한 조합을 과연 ‘책임경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닌 결정은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 권한과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들 위험뿐 아니라 신세계그룹의 신뢰성마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신세계의 문제는 전문경영인의 부재가 아니라 위기관리를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적부진, 계열사 부당지원, 노조탄압 의혹, 오너에 대한 검찰조사 등 숱한 악재가 쏟아질 때일수록 누군가 나침반 역할을 해야하는데, 이를 주도할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신세계도 다양한 각도에서 쇄신책을 모색하고 있겠지만 술은 괼 때 걸러야 하고, 종기는 곪았을 때 짜야 한다.
컨트롤타워가 없어 생긴 일로 지난달 중순 노조탄압 의혹에 대한 이마트의 어정쩡한 대응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이마트는 허인철 사장 명의로 일부 담당자의 잘못이 있었고 철저한 조사와 감사를 통해 관련자 문책과 징계를 진행할 것이라는 사과문을 냈지만 여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마트의 입장을 요구한 일부 기자들에게 전달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 결과 여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은 지금도 이마트에 대국민 사과요구를 하고 있다. 사과를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대응이 결국 여진을 남긴 것이다.
골목상권 침해가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을 키웠다면 얼마간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여론을 반전시킬 카드를 찾고, 불법파견 문제가 논란이 된다면 정규직 전환 등 통큰 해법을 고민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결정을 자기 일만 잘하는 전문경영인이 할 수 있을까. 정 부회장을 등기이사에서 뺀다고 지금의 어려움이 해결되진 않는다. 신세계에는 다들 손가락 끝을 보고 있을 때 달을 봐야한다고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