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여걸' 호 칭, 테마섹 떠나다

by김윤경 기자
2009.02.09 16:03:04

리콴유 며느리이자 리셴룽 총리 부인 호 칭, 사임키로
후임에 찰스 굿이어 전 BHP빌리튼 CEO
투자실패 책임론도..테마섹은 부인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홀딩스가 수장(首將)을 바꿨다.

테마섹은 지난 6일(현지시간) 그동안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왔던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 부인이자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며느리인 호 칭(何晶)이 물러나고 BHP빌리튼 CEO 출신의 미국인 찰스 칩 굿이어(51)가 오는 10월부터 새 CEO에 오른다고 발표했다.

호 칭은 이사 자리도 내놓게 된다. 그가 이후 어떤 행보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고 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재무부가 정부 지분율이 20% 이상인 기업(정부출자회사)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 1974년 만든 지주회사. 1850억 싱가포르달러(1340억 미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만지고 있는 국부펀드다.

▲ 테마섹 새 CEO 찰스 굿이어(右)..전임자 호 칭(左)


지난 2002년 5월 호 칭이 테마섹에 합류하면서 테마섹은 해외 금융권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굵직한 서구 은행 지분을 속속 사들이며 테마섹의 활동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사무소가 없었던 테마섹은 해외 투자에 적극 열을 올리면서 그동안 중점적으로 투자했던 아시아 자산 일부를 매각하고 서구 은행 지분을 사들여 왔으며, 남미엔 거점도 마련했다.
 
지난해 3월말로 끝난 2007 회계연도에 테마섹은 182억 싱가포르달러(129억2000만 미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한 해 전에 비해 배로 늘어난 것. 지난 30여년간 올린 수익률은 연간 18%로, 전 세계 기관투자자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기관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호 칭 재임기간중 아시아에 대한 집중 투자로 괄목할 만한 투자수익을 올렸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 무디스 등은 `AAA` `Aaa` 등 최고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 속에선 속속 투자 실패를 겪어 왔다. 메릴린치 투자로 인한 장부 손실이 2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12월 59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약 9%를 획득했고 이후 25억달러를 더 투자했지만 지난해 주가는 78%나 하락했고, 메릴린치 주식은 상장까지 폐지됐다.  
 
대신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매각되며 현재 테마섹은 BoA 주식 약 1억8900만주를 갖고 있다. 하지만 BoA는 정부 지원을 추가로 받는 등 어려움에 빠져 있다.



하지만 테마섹 관계자들은 금융위기 손실 때문에 CEO를 교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굿이어를 CEO로 영입하고자 처음으로 고려했던 것은 2007년이었으며, 새로운 CEO를 찾기 위한 작업이 적어도 수 개월간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S. 다나발란 테마섹 회장은 "총리와 연계돼 있는 사람을 교체하자는 방침에 따른 것이며, 이는 호 칭이 CEO를 맡을 때부터 고려됐던 것"이라면서 "호 칭을 선임해서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이 도움들은)그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갖고 있는 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없다"고 말했다.  
 
굿이어는 2월1일부터 테마섹 이사회에 참여했으며, 3월1일 CEO에 임명된 뒤 10월에 자리를 넘겨받을 예정이다. 테마섹은 굿이어 CEO의 역할은 전략적으로 다소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호 칭은 "굿이어는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다"며 후임에 대해 신뢰를 피력했다.



싱가포르는 표면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1965년 싱가포르공화국을 세운 리콴유 일가가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하고 있는 구조다. 테마섹의 CEO나 이사회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최종 임면권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의 또 다른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의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리콴유가 맡고 있다.  
▲ 호 칭


따라서 리콴유의 며느리 호 칭이 테마섹의 수장을 맡아 온 것은 싱가포르란 배경 하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올해 55세인 호 칭은 1976년 싱가포르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스탠포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땄다. 1985년 리셴룽과 결혼했다. 2년 후 국방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 싱가포르 테크놀러지 그룹에서 엔지니어 이사로 일했으며, 2001년 사임할 때까지 사장, CEO를 지냈고 2002년 테마섹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부터는 CEO를 역임했다.
 
2006년 포브스는 호 칭과 관련, 탁신 전 태국 총리 일가가 소유한 신코프(Shin Corp) 주식을 매입한 것을 크게 잘못됐던 판단이라고 지적했으며, 2007년 같은 잡지는 미국을 제외한 나라 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아시아머니는 2006년 호칭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2위에 올리기도 했다.
 
2007년 포브스는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우 이 전 중국 총리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6위로 꼽았다. 2008년 같은 조사에선 순위가 8위까지 뛰었다.
 
호 칭은 "조직의 경영을 위해 CEO는 후계 계획을 갖고 있는게 중요한 만큼 2005년부터 떠날 것을 염두에 두어 왔다"며 "10월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현 시점에선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삶을 후회로 영위한다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삶을 끝마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영자로서 후회가 없다는 소회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