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숲과 인간이 어우러진 `안반데기`
by편집부 기자
2009.09.29 14:47:06
| ▲ 안반덕에서 바라본 운해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이데일리 편집부]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는 안반덕. 이곳 사람들은 안반데기라고도 부른다. 안반은 떡메로 쌀을 내리칠 때 밑에 받치는 판때기를 말하고, 덕은 산 위에 형성된 평평한 구릉을 뜻한다.
이 동네의 생김새가 안반처럼 평평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 안반덕의 광활한 구릉지는 온통 배추밭이다. 1970년대에 정부가 주변 화전민들을 불러 모아 밭을 일구게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면적으로 따지면 무려 198만㎡. 광활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안반덕의 고랭지 배추는 6월 초에 심어져 8월이 지나면 절정을 이루고, 추석을 전후해 모두 출하된다. 하루가 다르게 몸을 불리는 배추들의 파노라마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지금은 수확이 한창이라 황토색 맨흙과 초록 배추가 반반이지만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마저도 예술이다.
옥녀봉 꼭대기에 오르면 풍력발전기 두 대가 바람 불때마다 웅웅거리며 긴 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밑으로 이국적 향취 물씬 풍기는 배추밭이 포물선을 그리며 끝없이 펼쳐졌다. 먼발치 첩첩산중에는 구름이 바다를 이룬다.
| ▲ 안반덕 배추수확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동틀 무렵에 안반덕을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추밭도 아름답지만 강릉 앞바다에서 떠오른 태양이 삐죽삐죽 솟은 백두대간을 골고루 비추자 골짜기마다 잠겨 있던 구름바다가 번쩍인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광경이다.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다.
| ▲ (좌) 식물원의 억새, (중) 산딸나무 열매, (우) 야생화(산구절초)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한국 자생식물원으로 향했다. 안반덕에서 오대산 월정사 방면으로 약 30km 가면 식물원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토종 꽃과 나무들로만 조성된 자생식물원은 그 자체로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입구에서부터 주제별로 이어진 관람로를 따라 산책하듯 걷다보면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야생화가 만발하는 시기는 한여름이다. 하지만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소박한 듯 화려한 산구절초를 보는 맛도 남다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가을로 접어들며 삶을 정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한다. 그러나 산국, 구절초 등 국화과 식물들과 용담, 솔체꽃 등은 끝까지 남아 가을 손님을 맞는다.
더불어 마가목, 찔레, 산딸나무, 개버무리, 투구꽃, 괴불나무 열매 등도 곳곳에서 가을바람을 만끽한다. 오대산의 가을이 깊어질수록 주변 나무들의 단풍도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식물원의 정취는 절정에 달한다.
| ▲ (좌) 자생식물원 풍경, (우) 자생식물원의 새집들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한국자생식물원에서는 꽃들과 함께 독특한 모양의 새집도 볼 수 있다. 10년 동안 새집만 만들고 있는 새집 목수 이대우씨의 작품을 생태식물원과 갤러리 ‘비안’에서 전시한다.
식물원은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이 그냥 한 바퀴 돌아본 뒤 휙 떠나지 말고 천천히 꼼꼼하게 둘러보길 권한다. 실내전시관 안의 영상관에서 식물원의 종합적인 안내를 받고, 재배단지와 생태식물원을 천천히 돌아보면 기억에도 오래 남을뿐더러 야생화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꽃과 나무들에는 각각 이름표가 붙어 있어 학생들의 생태학습에 훌륭한 참고서 역할을 한다.
| ▲ 월정사 전나무숲길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오후로 접어들며 월정사 트래킹을 시작했다. 일주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가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한 낮임에도 숲길은 몇 가닥 햇살만이 땅에 닿는다.
오대산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줄곧 함께 해왔다. 아쉽게도 6.25 전쟁 때 칠불보전을 비롯해 영산전, 광응전 등 17개 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았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 만화스님과 현해스님까지 꾸준히 중건한 결과다.
| ▲ (좌) 월정사 적광전과 석탑, (우) 월정사 입구 연등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월정사의 상징이기도 한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완벽한 금동장식이 장엄한 상륜부 등 탁월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우리나라 대표 석탑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하나 탑의 층수나 자태로 미뤄볼 때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9km 거리이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자동차를 이용해 상원사 입구까지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계곡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오대산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월정사에서 시작한 아스팔트길은 부도군을 지나 반야교를 지나며 비포장길이 된다. 걷는 것이 행복해지는 시점이다.
| ▲ (시계방향) 상원사 전경, 상원사 동종, 상원사 문수전 앞 고양이 석상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상원사는 유명한 것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으로 유명하고,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동종은 한국 종의 고유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아울러 상원사는 조선시대 세조임금과 각별한 연연으로도 유명하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해 잘못을 참회했고, 지병을 고치려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또한 참배 중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도 전한다. 지금도 문수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두 개의 고양이 석상이 서있다.
| ▲ (좌) 적멸보궁과 연등, (우) 적멸보궁 오르는 길 (사진제공 여행작가 김수남) |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은 상원사에서 비로봉 쪽으로 약 1.3km 올라간 곳에 있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곳이기 때문에 법당 안에는 불상이 없고 불단만 설치돼 있다. 오대산 비로봉에서 내려온 산맥들이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였고, 적멸보궁은 그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천하의 명당이라고 감탄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