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찰제'에 대리점 속탄다

by김보리 기자
2011.04.20 13:58:42

현대차 '정가제'시행 한 달 반, 현장 가 봤더니…전반적으로 '합격점'
본사 직영 지점·개인사업 대리점 '온도차'

[이데일리 김보리 이창균 기자] "에누리요? 절대 안 됩니다. 본사에서 알면 회사 관둘 각오를 해야 하는데. 진짜 본사 파견요원 아니시죠? 그러면 저와 공동계좌를 만들어서 노후차 지원 등 해당 안 되는 할인혜택을 넣어드릴게요. 그것 밖에 없어요"

강북에 위치한 현대차(005380) 판매점에서 3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돌아온 답이다. 판매원은 본사에서 나온 '미스터리 쇼퍼'가 아니냐며 묻고 또 물었다. 본사 직원이 아닌 걸 확인하고서야 공동명의라도 해 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대차가 고질병인 제 살 깎기식 할인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가판매'를 선언한 지 한 달 반. 정가판매제가 얼마나 정착됐는지 현장을 돌아봤다.



"본사에서 이렇게 깐깐하게 정가판매제를 점검할 때가 없었어요. 공문 발송에, 암행어사 감찰까지, 걸리면 영업취소라도 받을 기세라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현대차 A 판매점) 

결론부터 말하면 900여개 영업소에서 모두 같은 가격에 차를 판다는 현대차의 정가판매제는 합격점이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 8군데의 대리점을 돌아봤으나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정가판매를 어기면 영업소 '밥줄'이 날아가니 도저히 대리점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 현대차 정가제를 설명하는 문구

현대차 영업소에서는 추가 할인이란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영업사원이 적발되면, 판매수당 회수와 출고정지 등의 제재가 떨어진다. 또 국내엽업본부 업무지도팀이 고객을 가장해 전국 영업소를 도는 '암행어사 감찰'인 미스터리 쇼핑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아직 공식적으로 '정가판매'를 선언하지 않은 기아차는 아직까지는 추가 할인 여지가 좀 있는 편. 하지만 기아차 역시 곧 5월 중에 정가판매 선포식이 있을 것이란 분위기가 돌면서 추가할인 카드를 영업소에서 먼저 꺼내기는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모닝 한 대 팔면 수당으로 24만원이 나와요. 이번 달 판매량을 아직 못 채웠는데 진짜 사실거면 제 인센티브 안 받는 걸로 치고 30만원 깎아드릴게요"
 
떼쓰듯 추가할인을 요구하는 통에 겨우 30만원 할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기아차는 정가판매를 아직 검토 중이고 최종확정 되지는 않아 약간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정가판매로 대리점들이 모두 상황은 같은 것은 아니다. 현대차 직영으로 운영되는 지점과 개개인이 개인사업자인 대리점 간에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차종별로 다르지만 차를 판매한 뒤 회사에서 받는 차 값의 2~3% 수준의 영업수수료를 받는다. 영업수수료는 차를 많이 팔면 많이 가져갈 수 있지만 실적이 없으면 수입도 없는 격이 된다. 반면, 본사 직영 지점은 수당제로 월급이 정해져있고, 월급 이외에 차값의 1~2%정도를 '플러스 알파로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리점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전국 900개 대리점 중 어딜가도 이제 똑같은 가격이다 보니 고객들은 전시차량이 많고 잘 꾸며진 직영점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 현대차 900여 개의 대리점 중 지점과 대리점은 딱 5대 5인 상황이다.

성북구의 한 딜러는 "제가 고객이라면 어딜 가도 다 가격이 같은데 구태여 소개받아 멀리 찾아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면서 "집이나 회사에서 가깝고, 전시차량 많은 매장을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장이 협소한 대리점은 더욱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리점 딜러는 "월 최소 판매대수를 못 채우면 본사교육을 받아야 돼 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내 인센티브를 내줘도 결과적으로 한 대라도 더 파는 게 이익이라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반면, 본사 직영의 지점은 오히려 정가제가 효율적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서울 A지점의 판매원은 "가격만 떠보는 고객이 아니라 실제 구매 의사가 있는 알짜 고객들이 와서 업무효율이 더 올라갔다"면서 "계약시간도 훨씬 단축돼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리점들은 이제 기존 자기 인센터브를 털어 가격을 깎아주던 것에서 벗어나야 하니 저마다 이색 마케팅 기법을 찾기에 고심 중이다. 강북의 한 딜러는 제3자와 공동명의로 차량을 구입하는 방법을 권했다. 

차를 사려는 사람이 제 3자와 공동명의로 차량을 구입하면, 일반 고객에게 해당되지 않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2002만원의 YF쏘나타 하위트림을 공동명의로 구입한다고 가정할 때, 차를 사려는 사람이 이번 달 프로모션 조건인 노후차 지원 50만원, 3대째 고객 적용 30만원 등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없더라도 딜러 명의로 이를 지원해주면 차주는 여기에 해당하는 80만원의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공동명의로 한 후, 차 값의 7% 정도에 해당하는 14만원 안팎의 취득세만 내면 다시 본인 단독 명의를 돌릴 수 있어 이 방법을 권하는 판매점도 꽤 있었다. 다만, 이는 전액현금결제와 일시불 카드결제에서만 적용이 돼 실제 이용 고객은 적은 편이다.

한 딜러는 "전에는 판촉이 주로 팔기 전에 어떤 할인과 혜택을 줄 수 있을지에 집중이 됐는데, 지금은 사후에 자동차 관리를 더 신경쓴다거나, 작은 선물 등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면서 "기존에 해 오던 판촉물 배포와 같은 방법 외에 이색적인 마케팅 기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