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포옹' 9년 만에 조문도 안 가는 사이된 故박원순·안철수

by김민정 기자
2020.07.13 10:57:42

2011년 8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한 식당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이번 논란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합리적 공론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안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누구보다도 정의와 공정을 외치고 개혁을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정반대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며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이 뒤바뀌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일마저도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장례식 형식과 조문에 대해 논란이 많다. 국민들께서 많은 생각이 계시겠지만 저는 이번 논란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합리적 공론화가 이뤄지길 바란다”면서 “막무가내식 진영논리와 저급한 정치논쟁이 아니라 정말 이 나라 이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바쁜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0시 1분께 서울 성북구의 삼청각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 시장의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권 인사들은 박 시장의 빈소에 조문을 가지 않았다. 성추행 피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중 안 대표의 조문 거부는 다른 야권 인사들의 행보와 달라 눈길을 모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고인의 죽음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번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대표는 “공무상 사망이 아닌데도 서울특별시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지금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과 처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라고 했다.

안 대표의 조문 거부는 지난 2011년에 맺은 두 사람의 인연을 감안할 때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조건없는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로 ‘아름다운 양보’라는 수식까지 붙었던 박 시장과 안 대표.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 변호사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박 시장은 안철 수 당시 교수의 지지를 등에 없고 나경원 후보를 꺾은 채 화려하게 서울시장 자리에 올랐다.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안 대표와 박 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에 함께 몸담기도 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로는 줄곧 다른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맞붙었다. 후보 단일화를 한 지 7년 만에, 안 대표가 현역인 박 시장에게 도전하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안 대표는 19.55%를 얻어 52.79%였던 박 시장의 득표율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4월 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 시장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과거 서울시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던 일을 상기하며 “9년 전 서울시장을 양보했을 때, 그다음 해 대선에서 후보를 양보했을 때, 각각의 이유는 달랐지만 저는 세상의 선의와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믿었다”며 “그러나 기성 정치권은 저를 ‘철수정치’라고 조롱하고 유약하다고 비웃었다”고 했다.

또 안 대표는 “양보를 받은 사람들도 받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했지만 막상 양보를 받자 끊임없이 지원만을 요구했지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실패의 책임을 제게 덮어씌우는 모습을 보며 ‘정말 이쪽 세상과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시장의 사망으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의 판이 커졌다. 2022년 대선을 1년 앞두고 치르는 ‘소통령’ 서울시장 선거이기 때문에 대선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당에서는 안 대표가 보궐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 대표가 선거 전면에 나서서 야권 승리를 이끌고 상승세를 대선까지 끌고 간다면 대선 국면에서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안 대표가 4·15 총선에 불출마하고 차기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급을 낮춰 서울시장 출마를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이 13일 오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오전 7시께 진행됐다. 박 시장의 발인은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됐다.

영결식 현장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유족과 시·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 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영결식은 서울시와 tbs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영결식은 개식선언을 시작으로 추모곡 연주, 장례위원장 3명의 조사, 시민의 조사, 헌화, 유족 대표의 인사말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