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유럽, 가스 살 때 루블로 내라"…통화가치 복원 '꼼수'

by고준혁 기자
2022.03.24 09:55:58

"이른 시일 내 ''비우호적 국가''에 조치 내릴 것"
유럽 기업들 "계약에 없다" "유로로 낼 것" 반발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구입할 때 유로가 아닌 루블화로 결제를 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은 “계약 사항에 없는 조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 집단들은 그들의 자국 통화에 대한 모든 신뢰를 스스로 잃었다”며, 유럽의 가스 구매자들이 루블화로 대금을 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능한 이른 시일 내로” 이같은 조치가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에 내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에서 공급되는 제품이 그들의 통화인 유로로 결제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FT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한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3일 러시아 통화 환율은 1달러당 약 132루블을 기록한 뒤 이날 96루블로 하락했으나 전쟁 전 76루블에 비하면 루블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통화가치가 다시 오르려면 수요가 많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강제적으로 유럽의 가스 구매자들이 루블화를 쓸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가스 가격은 상승세를 타고 있어 앞으로 루블화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은 이날 ㎿h(메가와트시)당 107유로를 기록, 전 거래일 대비 9% 상승 마감했다. 해당 가격은 일 년 전 대비 6배나 높은 것이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혼란에 빠졌다. 러시아 입장과는 달리 전쟁으로 가치가 불안정한 루블화를 사용하는 것에 위험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인 에너지 에스펙츠의 제임스 와델 유럽 가스 부문 고문은 푸틴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서방의 제재 속에서 러시아가 가스 계약을 완전히 망치려고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유럽 국가들이 당장 루블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일주일간의 말미를 주겠다고 말했다. 유럽 기업들은 푸틴 대통령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석유화학 그룹인 OMV는 러시아에 가스 비용을 계속 유로로 지급하겠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유틸리티 기업인 엔지 역시 루블화 지불 옵션이 애초 계약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