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진철 기자
2008.03.13 15:59:35
국민연금, 정몽구·박용성회장 경영참여 반대표명
기관투자가 의결권 적극행사..주주권리 찾기 나서
[이데일리 이진철기자]
국민연금은 현대차(005380)와 두산인프라코어(042670)의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건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키로 결정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위원회는 정몽구 회장과 박용성 회장이 경영능력은 인정되지만 법원에서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행사키로 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지분 4.56%,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2.29%를 각각 보유하고 있어 실제 반대의결권이 행사되더라도 주총안건 통과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전망이다.
그러나 두 재벌총수의 경영참여를 반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관투자가가 총수의 독단적인 행동에 주주로서 제동을 걸 수 있고, 더이상 주총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기업의 대주주일지라도 도덕성이나 경영능력에 흠집이 있을 경우 반대의사를 적극 행사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성지건설(005980) 지분 24.4%를 730억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박용오 전(前) 두산그룹 회장은 오는 21일 예정된 성지건설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비롯한 최측근들을 등기이사 및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이에 대해 성지건설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는 공시를 통해 이들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감사 후보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힌 상태다.
장하성펀드측은 "과거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등에 관련됐던 박용오씨의 행적을 볼 때 성지건설 경영권 인수는 기업투명성과 주주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고 반대이유를 설명했다.
국내 펀드시장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사들도 투자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주총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국내 운용사들의 반대의결권 행사는 주총안건 통과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투자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산운용사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곳은 알리안츠자산운용이다.
알리안츠자산운용은 이번 현대차 주총에서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건에 대해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이 찬성 의견을 표시한 것과 대조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중립`의견을 냈다. 동국제강(001230) 주총에서도 이사회 출석률 0%인 사외이사 재선임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시했다.
자산운용사들의 반대의결권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주주권익을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행사도는 모습이다.
서울음반(016170)은 음반 제조 및 유통판매사업을 서울미디어에 양도키로 했다. 이에 서울음반 지분 2%를 보유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음반사업이 서울음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주총에서 사업분할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펀드의 운용자금 규모가 수백조원대로 성장하면서 펀드들의 의결권 행사가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관투자가들이 과거엔 경영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기업의 지분투자를 꺼렸지만 이제는 기업들의 주총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주주권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투자철학의 변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국내기업 투자가 늘면서 주총에서 적극적인 경영참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계펀드인 렉시파트너스는 삼부토건(001470)의 경쟁력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참여를 추진키로 하고 오는 21일 주총에서 캐빌 발라락시아 펀드매니저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상태다. 렉스파트너스는 몇년간 단순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경영참여로 급선회한 사례다.
발라락시아 렉시파트너스 매니저는 "최근 한국의 자산운용사들이 투자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움직임은 글로벌 추세를 봤을 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