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통령도 소용없었다…'붉은 여름' 재현되나

by권소현 기자
2016.07.10 16:15:38

1919년 최악의 인종 폭동사태 데자뷰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인종갈등 여전
SNS가 분노 자극…윤리적 역할 논란도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해도 인종차별과 갈등에서는 나아진 바가 없었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의 인종차별적 대응과 이에 불만을 품은 흑인이 경찰을 저격한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여실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미국은 1919년 발생한 ‘붉은 여름’(red summer)이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시 시카고, 찰스턴, 롱뷰, 워싱턴D.C 등 25개 도시에서 흑인 폭동이 발생해 수많은 흑인들이 죽고 다쳤다. 특히 시카고에서는 흑인 소년이 물놀이 도중 백인의 돌에 맞아 숨진 사건에 백인 경관이 수사에 뜸을 들이자 이에 분노한 흑인이 경찰을 향해 쏭을 쏘면서 시작됐다. 2주간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사망하고 537명이 부상당해 최악의 인종갈등으로 기록됐다. 이번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발생한 경찰 저격사건과 유사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두달 전 하워드대 졸업반 강연에서 “내가 졸업할 때에 비해 미국은 인종과 관련된 부분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며 “미국에서 젊고 재능을 가진 흑인으로 살 시기를 고르라면 아마 지금을 선택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댈러스 사건이 터지자 그는 “미국이 60년대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저격범은 미친 사람일 뿐 모든 미국인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프레데릭 C 해리스 콜롬비아대 흑인정책 및 사회 연구소 국장은 “미국 내 인종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또 다른 붉은 여름이 될 것 같은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낸시 라 비네 도시연구소 사법정책센터 국장은 “백악관과 미국 경찰이 흑인과 법집행 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후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록 유색인종과 경찰 간 관계와 신뢰는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찰이 흑인에 대해 과잉진압했다는 논란은 계속 반복돼 왔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인 로드니 킹을 백인 경찰관이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LA 폭동으로 이어졌고 2014년 8월에는 미국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상태였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하자 주요 도시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었다.



이번 댈러스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백인과 흑인 간 의견차이는 뚜렷하게 갈렸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서 백인의 3분의 1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인종갈등이 더 악화됐다고 답했다. 개선됐다는 답은 28%로 이보다 적었다. 반면 흑인 중에서는 51%는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갈등을 개선했다고 답했고 5%만이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인종갈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갈수록 백인 중에서도 공화당원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높아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찰이 총격을 가하는 이미지와 뉴스가 좀 더 빠르게 전달되면서 흑인 사회의 분노를 자극했다는 시각도 있다. 래리 E 데이비스 피츠버그대 인종 및 사회 문제센터 학장은 “상황이 악화했다기 보다는 좀 더 명백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페이스북도 유탄을 맞았다. 백인 경찰이 흑인 운전자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차 안에 있던 여자친구에 의해 페이스북 라이브로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소셜미디어의 윤리적 기능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레이놀즈가 올린 동영상에 대해 “너무 생생해 가슴이 아프다”며 “라이브 서비스는 수백만명의 사회 구성원이 매일 겪고 있는 두려움을 조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레이놀즈의 것과 같은 동영상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며 “더 열려 있으면서도 연결된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갈 길이 얼마나 더 먼지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편집이나 가치판단을 통해 거르는 기능 없이 각종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문제도 양산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진 라로시 아발라가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경찰관 부부를 살해한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전달해 충격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