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법 12년만에 리모델링..배경과 쟁점은?

by정원석 기자
2009.04.22 14:41:32

한은 설립목적에 `금융안정`추가
금감원-한은 크로스체크 시스템으로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한국은행법이 12년만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률심사소위원회가 한은법 1조 설립목적 조항에 기존의 `물가안정`외에 `금융안정`을 추가하며 한은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한은법이 어디까지 어떻게 바뀔지, 그 파장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지난 1997년 한은법 개정 때 금융감독원에 넘겨준 금융회사에 대한 직접 조사권을 한은이 부분적으로나마 되찾아 올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회 정무위원회 등이 이에 대해 여전히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적잖은 난항도 예상된다.



이번 한은법 개정은 기본적으로 금융감독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에서 출발했다. 금융감독 권한과 책임을 금감원에 몰아주기보다 영역을 나눠 금감원과 한국은행 두 기관에 나눠 맡겨보자는 시도다.

법안 개정을 주도한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그동안 은행들이 자산 불리기 경쟁에 나서며 PF대출을 확대하고, 리스크가 큰 각종 파생상품 등에 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금융감독 기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거시경제 전체의 시스템 관점에서 건전성을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률 민주당 의원(재정위 경제소위 위원장)은 "현재의 금융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여부를 두고 한은법 개정에 대해 접근해야 된다"며 "거시적인 시스템 안정을 위한 감독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에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별 금융기관의 재무적 안전성 등 미시 건전성 감독에 치우친 현재의 금융감독원 중심의 감독체계로는 경기변동에 따른 주기적 위기 발생 가능성은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은에 금융안정 책무를 부여한다는 것은 위기시에 유동성 공급을 원활하게 하도록 한다는 것 뿐만아니라, 금융불안 요인에 대한 사전적인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이상,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의 거시 건전성 감독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게 법개정에 참여한 의원들의 생각이다.





한국은행에서는 이번 법개정에 표면적으로는 `무덤덤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이번 법개정으로 한은이 금융회사들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융안정을 위한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만큼 그에 따른 정책 수단을 확충해주는 것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동안 금융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법 개정안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금통위 의결에 따라 지급준비 적립대상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고, 증권대차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것 등 이번 개정안에 담긴 새로운 정책수단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지준 대상이 확대될 경우 은행들이 은행채를 과도하게 발행해서 자산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 일정정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등 전반적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이번 법 개정이 이뤄지게 된다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을 좀 더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위원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의결된다고 하더라도, 법개정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몇가지 난관이 남아있다.
 
우선 한은에게 조사권이 부여될 경우, 조사 대상이 되는 금융회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른바 `이중 감독·검사`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도 여전히 한은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을 관할하는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3일 한은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 시기에 법 개정은 유의성이 떨어지고 적절하지 않다"며 "지금 단독 검사권을 갖게 되면 금융감독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 입법안에서 한은이 갖게될 조사권의 행사 대상을 ▲자금조달과 운용의 불균형으로 유동성이 악화되거나 과다해질 가능성이 높은 금융기관과 ▲ 한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금융기관으로 제한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이에대해 "금융안정이 깨졌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금융기관이 이중으로 조사받는 부담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면서도 "한은이 조사 실시 실적에 대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조사 남용에 대한 방지책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개정안이 재정위를 통과할 경우,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입법 우선 순위 등을 두고 국회에서 또 한번의 조율을 거칠 전망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법 개정안에 대한 재정부측의 입장과 한나라당 당론이 어떻게 형성될지가 법개정 여부에 주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회 회기 일정상 4월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