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냉전 후 첫 군사충돌…美 무인기, 러 전투기와 대치 중 추락

by박종화 기자
2023.03.15 11:21:57

美 "러시아 전투기가 공격"…러 "무기 사용·접촉 없었다"
미군 "러 공격적 행위 오판·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미 러 대사 "미·러간 의도치 않은 충돌 원치 않아"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미국 무인기가 우크라이나 인근에서 러시아 전투기와 대치 중에 추락했다. 미국은 러시아 전투기가 자국 무인기를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이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러 관계가 더 경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군 MQ-9 ‘리퍼’ 무인기.(사진=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 수호이(Su)-27 전투기 두 대가 14일(현지시간) 오전 7시경 우크라이나 인근 국제공역에서 정찰 비행 중이던 자국 MQ-9 ‘리퍼’ 무인기를 공격했다고 이날 밝혔다.

Su-27이 MQ-9에 연료를 뿌리는 등 비행을 방해하다가 이 중 한 대가 MQ-9 프로펠러와 부딪혀 MQ-9가 흑해로 추락했다는 게 미 국방부의 설명이다.

미 국무부는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이번 사건에 항의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뻔뻔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표현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항공기가 상대국 항공기를 차단(intercept)하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라면서도, 대부분의 경우 상대 항공기의 정체 파악 등을 목적으로 안전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미국측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전투기는 항공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무인기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MQ-9는 급기동 과정에서 스스로 추락했다는 게 러시아 주장이다. MQ-9가 자국이 설정한 임시 공역을 넘어 러시아 영공을 향하고 있었다고 역공도 폈다. 이런 주장에 라이더 대변인은 “충돌 장면이 녹화됐으며 이를 공개할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미국 주장대로 이번 사건이 러시아의 고의적인 공격이라면 미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이 냉전 이후 처음으로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한 사건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상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역내 군사적 긴장감이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흑해 지역에서 미군의 정보 및 정찰활동을 견제해 왔지만, 미국 등 서방의 항공기에 근접하지 않고 멀리서 위협해 돌려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러시아는 미국의 흑해 비행 자체를 도발로 간주하고 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러시아 조종사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위는 위험하며 오판과 의도치 않은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백악관도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요격이) 러시아가 흑해상 국제영공에서 우리의 비행·작전을 저지하거나 단념시키려는 메시지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실패할 것”이라며 “흑해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국가 안보 이익을 위해 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과 러시아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미 국무부 초치 후 기자들과 만나 “카렌 돈프리드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차관보가 이번 사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러시아에 미칠 파장은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회담은 건설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CNN과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와 미국이 의도하지 않은 충돌이나 우발적인 사건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