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안승찬 기자
2008.07.31 15:33:05
[이데일리 안승찬기자] 행복한 고민의 경우 가끔 드러내놓고 말하기 민망한 경우가 있다. 다음의 경우가 꼭 그랬다.
31일 발표된 다음(035720)의 2분기 실적은 어느 때보다 시장의 관심이 높았다.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가 촛불집회의 진원지로 부상한 만큼 회사의 실적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절반의 성공' 쯤이랄까. 외형상 실적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지만, 트래픽이 눈에 띄게 급증한 것에 비하면 기대에는 못미쳤다는 평가다.
눈길을 끌었던 점은 "아고라 효과"에 대한 다음의 모호한 태도다. 다소 혼재된 발언들이 오갔지만, 어찌들으면 "아고라 때문에 트래픽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로 들릴 법한 발언도 적지 않았다.
컨퍼런스콜에 나온 김동일 다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아고라가 전반적인 서비스 상승에 크게 도움은 안됐다", "2~3년간의 장기적인 플랫폼과 검색 투자의 효과로 트래픽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고라를 통한 차별화된 포인트가 생기면서 인지도가 더욱 올라갔다", "자세히 밝히기는 그렇지만 초기화면 변경자의 상당수가 아고라를 통해 유입된 이용자들"이라고도 말했다.
이처럼 혼재된 발언의 내면에서는 다음의 말못할 고민이 깔려있다. 진보적인 정치색을 대놓고 인정하기도, 그렇다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애매모호함 말이다.
사실 5월 이후 다음의 트래픽이 급증했던 것은 누가 보더라도 촛불집회에 따른 아고라 효과다. 광고경기 부진과 취약한 영업력 때문에 실적으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더라도 '후광'을 누린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적 성향이 신문들이 다음의 뉴스공급을 중단키로 했지만, 영향이 거의 없던 이유도 그만큼 진보적인 성향의 '골수' 유저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정부의 눈밖에 난 다음이 '진보적' 정치색을 자랑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정치색이 씌워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린 정치색이 부담스럽다" 대놓고 말할만한 상황은 또 아니다. 다음 입장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최대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촛불집회를 통해 좋건 싫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다음에 진보적인 정치색이 씌워졌고, 그 때문에 다음의 트래픽이 갑자기 급등했다"며 "이런 차별화된 이미지가 아니면 다음의 트래픽이 단기간에 올라갈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광고경기가 좋지 않아 두자릿수까지는 어렵겠지만, 다음은 3분기 실적이 2분기보다 더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심 좋지만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고민, 다음의 현재 심정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