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도 우려한 공수처법 24조1항…尹내란죄 수사 변수로

by성주원 기자
2024.12.09 10:50:48

"공수처장 판단만으로 檢·警 수사 가로채나"
기준 모호성 지적…거부권·협의 절차도 없어
견제장치 부재한 이첩요청…자의적 판단 우려
美·英은 협의로 해결…"객관적 기준 마련 시급"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제24조 제1항을 둘러싼 ‘수사기관간 샅바싸움’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수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 조항은 공수처장이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와 중복되는 사건에 대해 이첩을 요청하면 해당 기관이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세현(왼쪽부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서울고검장),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오동운 공수처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영훈·노진환 기자)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른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 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박세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서울고검장)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직권남용과 내란, 두 가지 혐의를 모두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내란죄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라며 검찰의 합동수사 제안을 거절했다. 경찰은 15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단을 꾸려 독자 수사를 진행 중이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을 중심으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공수처도 가세했다. 공수처는 “중복수사 우려를 해소하고 수사의 신속성,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라며 검찰과 경찰에 사건 이첩을 요청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경 수사가 진행 초기인 점, 특히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수사 대상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공정성 논란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법리 검토 후 입장을 알리겠다”며 즉각적인 수용을 미뤘다.

문제는 이첩요청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공수처법 제24조 제1항은 ‘수사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해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첩 요청의 기준인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은 추상적이어서 공수처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첩 요청을 받는 다른 수사기관, 즉 검찰과 경찰에게 거부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해당 수사기관이 이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법 조문상으로는 공수처장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수사 관할에 대해 협의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다.



자료: 헌법재판소
지난 2021년 헌법재판소의 공수처법 관련 헌법소원심판 결정문에서도 제24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관들간 의견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다수의견은 “중복수사 방지와 형사사법권의 통일적 행사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입법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공수처법 제24조 제1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각하했다.

그러나 당시 소수의견은 “행정부 내 다른 수사기관과의 상호 협력적 견제관계가 훼손된다”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공수처장에게 일방적 이첩요청 권한을 부여하고 다른 수사기관은 무조건 따르도록 한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수사기관간 협의를 통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수사기관들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사건 관할을 조정한다. 각 사건별로 기관간 협의를 통하거나, 구체적 기준을 정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수사기관간 상호 협의를 통해 이첩 여부를 결정하며, 기본협약을 통해 이를 규율한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인 만큼 이첩요청권 행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헌법적 가치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라며 “공수처장의 단독 판단으로 이첩을 결정하기보다는 수사기관간 협의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신병은 검찰이 확보한 상태지만, 김 전 장관 사무실과 공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경찰이 진행하는 등 수사가 분산돼 있다. 여기에 공수처의 이첩요청까지 더해져 수사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수처의 이첩요청권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진= 이데일리 노진환·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