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넘치고 아빠는 없던 5월…

by조선일보 기자
2009.05.07 15:58:00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의 희생과 그리움 다룬 작품 3편 무대에

▲ 《손숙의 어머니》에서 죽음을 준비하는‘어머니’손숙. 경상도 밀양 사투리에 웃음과 울음을 뒤섞으며 일생을 돌아본다./연희단거리패 제공
[조선일보 제공] 엄마는 넘치고 아빠는 없다.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5월의 연극 목록은 그렇다.
 
《손숙의 어머니》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친정엄마와 2박3일》…. 연극뿐 아니라 60만권이 넘게 팔린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달 말 개봉하는 김혜자 주연의 영화 《마더(Mother)》까지 온 세상이 "엄마!"를 불러대는 것 같다.



《손숙의 어머니》(연출 이윤택)가 공연 중인 서울 이해랑예술극장에는 나이 지긋한 관객이 많다. 40~60대 부부, 모녀(母女)도 있다. 팔려가듯 시집가서 전쟁 통에 자식 잃고 온갖 고생을 하다 저승길로 가는 황일순 여사(손숙)의 일생에는 굽이마다 눈물이 잠복해 있다.

"나는 안 간다. 못 간다. 내 만내 볼 사람 다 만내 보고 액 풀고 신주단지 깨부수고 입동 전에 갈라요."

꿈에서 죽은 지아비를 만난 황일순은 이렇게 저항한다. 문맹인 그는 드라마 작가인 아들에게 "받아쓰라"며 자신의 인생을 재생한다. 꿈과 실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가슴에 묻은 첫사랑, 논 서 마지기에 팔려간 시집, 남편의 첩질, 6·25 피란 시절 아들의 죽음…. 순천 기생 출신 시어머니(김미숙)의 젓가락 장단에 웃던 관객은 어느새 눈가를 훔친다. 글을 깨우친 어머니가 쓴 꼬부랑 글씨 '황일순'이 무대에 크게 새겨지면서 막이 내린다. 24일까지. (02)6005-6731





엄마(박정자)와 딸(서은경), 모녀만 등장하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연출 임영웅)에서도 엄마는 아빠와 사별한 상태고 결국 죽는다. 엄마와 불화했던 딸은 기억 속 엄마를 불러낸다. "(엄마가 없으니) 우리 남매는 아무리 합쳐봐야 영원히 외톨이로 남을 것"이라며 울먹인다.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엄마’박정자./산울림소극장 제공
보조석을 낼 정도로 흥행 중인 이 연극에서 어머니는 친구 같다. 

딸과 수다를 떨다 '걱정 모드'로 급회전하고,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볼일 보면서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자기 삶을 꿰뚫어보는 엄마의 눈길이 불편했던 딸이거나, 딸과의 갈등으로 가슴 아팠던 엄마라면 더 뜨거워질 이야기다.

젊은 시절부터 노역(老役)을 한 박정자는 엄마 연기에 능하다. 7월 명동예술극장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는 그가 맡은 온달 모(母)의 명대사로 기억되는 "눈이 오는군…"을 다시 들을 수 있다. 5월 10일까지 산울림소극장. (02)334-5915



《친정엄마와 2박3일》(연출 구태환)에서 강부자는 딸과 가정을 돌보느라 좋은 세월 다 보낸 시골 엄마다. 마흔을 바라보는 딸에게 여전히 바리바리 싸주고 싶어하고, "너도 꼭 너 닮은 딸을 낳아보라"며 소리 지르는 엄마다. 이 연극에서도 엄마는 혼자지만, 엄마가 아닌 딸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