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목표였던 포괄임금 규제 지침 폐기한다…“오남용 감독할 것”

by최정훈 기자
2022.12.19 14:19:09

고용부, 文정부 목표였던 ‘포괄임금 규제 지침’ 폐기하기로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포괄임금제, 지침 만들면 부작용 우려”
포괄임금 오남용 감독으로 악용 방지 나서…20여 곳 대상
내년 상반기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 정착 등 종합대책 마련도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추진했던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이 폐기된다.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포괄임금제의 지침이 생기면 공식 제도로 오인돼 확산할 우려가 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정부는 문제의 핵심을 일한 시간보다 돈을 덜 받는 제도의 오남용에 있다고 보고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기업에 대한 기획 감독에 나서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을 끝내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노동 등 초과근무수당 일체를 월급에 포함하는 임금지급 방식이다. 현행 노동법에 명시되어 있는 공식 제도는 아니지만, 법원 판례에 따라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등에 활용되고 있다.

1800시간 수준까지 연간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포괄임금제 개선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법정 제도는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짜노동을 막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2017년부터 시작된 지침은 문재인 정부 막바지까지 공개되지 못했고, 결국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면서 폐기하기로 결정됐다.

고용부는 법정 제도가 아닌 포괄임금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는 사후적으로 형성된 법 논리인데, 지침을 만들면 제도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효과가 난다”며 “그러면 지침을 따라 하기만 하면 포괄임금제를 활용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결과(자료=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제공)
2010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다면 근로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을 것 △당사자 간 합의가 있을 것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을 것 등의 요건을 갖춰야지만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충분히 산정할 수 있어도 포괄임금제를 ‘고정OT(Ovetime) 계약’라는 이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장의 문제는 포괄임금제 때문에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못 받는 ‘공짜 야근’이 핵심이라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 계약을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으로 오남용하거나, 고정OT 계약을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으로 오인해 실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임금체불의 문제라는 것이다.



고용부는 실제로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만연하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방치됐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만연하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방치됐던 게 사실”이라며 “2020년 실태조사도 하고 국정과제이기도 했지만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적용사업체는 조사 대상인 2522곳 중 749곳(29.7%)에 달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상시 근로자 수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30.3%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했고, 10인 이상 100인 미만(29.8%) 사업장도 평균을 웃돌았다. 인력·자금난의 이중고를 겪는 제조업체의 26.1%도 포괄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고용부는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은 폐기했지만, 기획감독을 통해 오남용 방지에 나설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 등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의심사업장 20여 곳이 이번 감독의 대상이다. 연장근로 시간제한 위반, 약정시간을 초과한 실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 근로시간 관련 법 위반 여부를 집중감독할 예정이다.

또 내년 상반기에는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대책에는 근로자가 포괄임금제로 인해 임금 손실을 겪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전제인 근로시간 기록에 대한 투명한 관리 등이 담길 전망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임금 명세서 교부를 의무화하면서 근로시간 기록과 그에 따른 임금을 계산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100% 정착되어 있진 않다”며 “임금 명세서 교부 의무화를 정착시키고, 영세한 기업들이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포괄임금제는 사회 초년생인 청년 등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문제이나 그간 정부 차원에서 소위 포괄임금제의 오남용 시정 노력은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에 오남용에 대한 기획감독을 최초로 실시하고, 영세기업의 임금·근로시간 관리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방지대책도 마련해 공정한 노동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실근로시간 단축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