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은 허울뿐..우유배달로 먹고살아요"

by오마이뉴스 기자
2006.01.06 19:54:00

비정규직 생명공학 연구원이 바라본 ''황우석 파동''

[오마이뉴스 제공] "연구원 대부분이 일반적인 비정규직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아요. 사실상 일용직 수준이죠. 그래도 현장을 지키는 연구원들은 자부심으로 버팁니다."

이과 계열 석사급 연구원 김모씨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연구원이다. 몇 년전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지역 한 대학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cafe.daum.net/bioworkers) 회원이다.

이른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표현되는 연구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만들어진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에 벌써 70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오마이뉴스>는 3일 밤 서울 시내에서 김씨를 만나 이공계 연구원이 처한 현실을 들었다.


김씨는 "실험실은 군대이고 연구원은 소모품"이라며 "연구원들이 제왕적 교수들의 종노릇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교수 자제 컴퓨터 수리, 통장 정리 등 은행업무, 이삿짐 나르기, 심야 상가집 지키기 등 교수 개인의 뒤치다꺼리는 기본이다.

김씨는 "결코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며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런 분위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 "교수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논문이 통과되지 않아요. 생사여탈권이 교수 손에 있는데 누가 감히 말을 꺼낼 수 있겠어요. 이 바닥을 떠날 생각이라면 모를까."

김씨는 이런 이유로 연구원들이 연구성과를 내더라도 다른 실험실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실험 잘 하는 연구원을 놔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 김씨는 "논문이 통과되도 대개 2~3년은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부리려고 한다"면서 "교수 눈 밖에 나면 쫓아내고 잘 하면 안놔주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원의 역할은 교수가 지시하는 내용을 기술적으로 실현하는데 국한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황 교수팀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조작을 밝혀내는 데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 중요한 역할을 한 데서 드러나듯 현장에서 직접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원들의 능력은 탁월해요. 그러나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사장될 수밖에 없어요."

특히 황 교수팀은 수직적 구조가 가장 두드러졌다고 한다. 황 교수팀에 비서울대 출신 연구원이 많은 것도 그 같은 이유로 해석됐다. 유별난 황 교수팀의 수직적 구조를 학부 때부터 접한 서울대 수의대 출신 중에는 연구원으로서 전망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적지 않았고 그 자리를 이른바 '비서울대' 출신 연구원들이 채웠다는 것.



비민주적 실험실 구조는 연구원들의 열악한 처우로 이어졌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한 달에 10~20만원밖에 못 받는 대학원생이 적지 않아요. 등록금 지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황 교수팀 연구원들이 월 40만원 정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제 주변에서는 '우와, 많이 받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이는 연구원의 급여 자체가 낮을 뿐 아니라 서류상 기록된 급여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게 김씨의 분석.

"연구원 월급은 대개 학사급 80만원, 석사급 120만원, 박사급 150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어요. 1년 기한, 1억원짜리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학·석·박사급 연구원을 각 1명씩 채용할 경우 인건비만 4200만원이죠. 그리고 관행적으로 프로젝트비의 10~15%는 연구팀이 속한 기관에 귀속됩니다. 그러면 프로젝트비의 절반도 안 남고 연구비가 모자라게 되는데 연구원 급여를 줄여 충당하는 방식이죠."



김씨는 사비를 털거나 별도 재원을 마련하는 '스승'들도 간혹 있지만 대개 연구팀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연구원들 급여를 '삥땅치는' 일부 교수들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110만원대인 급여가 제대로 들어오는 등 자신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이기에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도 새벽 우유배달, 건설공사장 일용노동자 등 부업을 병행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규직 자리가 줄어든 것도 연구원들을 더욱 고달프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브릭에서 2005년 3/4분기 바이오분야 연구개발 인력의 구인 정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계약직+일용직)이 68%로 정규직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국가기관(98.4%), 대학(96.6%), 정부출연연구원(94.7%), 의대 및 병원(92.8%)은 비정규직 비율이 90% 이상이다. 또한 전체 구인 기관 중 4대보험 적용 비율은 57.5%이며 비정규직의 경우 37.4%에 불과하다. 특히 의대 및 병원(20.9%)과 대학(27.2%)은 비정규직의 4대보험 적용 비율이 더 낮았다.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은 연구원에 대한 신분보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김씨는 "궁극적인 목표는 정규직화"라며 "당장 정규직화가 어렵더라도 최소 생활 보장을 위한 몇 가지 요건은 시급히 실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제시하는 요건은 ▲프로젝트 기간만이라도 비정규직 연구원들에게 4대보험을 적용하고 연금을 도입할 것 ▲정규직 임금의 70% 수준은 맞춰줄 것 ▲'연구원 변경 신청'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 교수들이 마음대로 내쫓지 못하게 할 것 ▲기준급여 책정시 연구원 경력을 인정할 것 등이다.

김씨는 특히 "이 계통에서는 무엇보다 실험 경력이 중요한데도 '학·석·박사급 각 얼마'라고만 규정된 현행 급여 체계에서는 연구원 경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젊은 과학자들에게 지원하도록 책정돼 있던 10억원을 전용해 황 교수팀에게 예산을 몰아준 과학기술부 등의 사례를 들고 "젊은 과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들이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교수는 전체방향만 잡아주는 쪽으로 역할도 바꿔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황 교수 파문 때 몇몇 언론에서 기술유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고 한참 웃었어요. 석박사급 연구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방치한 채 기술유출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현장에서 단련된 이들이 억압적 구조와 곤궁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외국으로 떠나는 일은 이제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김씨는 현장에서 훈련된 연구인력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또 세포든 무엇이든 자신의 연구대상에 삶을 일치시키는 현장 연구원들의 '자부심'이 더 이상 현실에 짓밟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연구원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교수가 돼야겠다는 집착으로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보다는 벽에 부닥쳐 진척되지 않던 실험을 끝내 성공시켰을 때, 문제를 해결해 데이터들이 좌르르 펼쳐질 때 느끼는 그 손맛을 잊지 못해서입니다."

김씨는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 활동과 관련, "앞으로는 더욱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대학원생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동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