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신간 제목 표절일까…책 성패 제목의 기술

by김미경 기자
2023.08.30 12:44:43

조국 신간 에세이 '디케의 눈물' 제목
금태섭 '디케의 눈'과 비슷해 논란
출판계 "문제 안돼" 일각 "양해 구했어야"
성패 가르는 제목, 베스트셀러 만들기도
최근엔 실험적 개성 강한 제목 눈길

오는 30일 출간을 앞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간 ‘디케의 눈물’(다산북스·왼쪽)과 금태섭 전 의원이 2008년에 낸 책 ‘디케의 눈’(궁리) 책 표지.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표절이 맞다 vs 노이즈마케팅이다.”

출판계가 요 며칠 표절 논란에 시끄럽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8일 출간한 책 제목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의 이번 신간 제목은 ‘디케의 눈물’(다산북스). 공교롭게도 15년 전 금태섭 전 의원이 펴낸 ‘디케의 눈’(궁리, 2008년)과 제목이 흡사하다는 이유다.

출판계에 따르면 책 제목은 저자의 얼굴과 다름없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인쇄 전 막판까지 고심하는 게 책 제목”이라며 제목이 마케팅과 홍보전략의 8할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실제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가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리뷰(한줄평)들을 살펴보면, “제목 때문에 책을 구입했다”는 독자 반응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조국의 제목 논란은 책 출간을 나흘 앞두고 지난 24일 불거졌다.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새로운선택’의 곽대중 대변인이 지난 2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언론이 이를 받아쓰면서다.

곽 대변인은 “제목이 비슷한 책이 있을 수 있지만, 금 전 의원의 ‘디케의 눈’ 추천사를 쓴 인물이 바로 조 전 장관”이라며 “‘후배의 것’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서울대 법대 교수 재직 당시 금 전 의원의 지도교수였다.

조 전 장관은 “신당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맞섰다. 조 전 장관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신간 제목은 이하 2010년 한겨레 칼럼에서 뽑아온 것”이라며 “신당의 노이즈 마케팅에 씁쓸하고 측은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 그가 썼던 ‘디케가 울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도 함께 공유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이번 조국 책을 펴낸 다산북스 측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금 전 의원의 책이 오래된 데다, 제목도 같지 않을뿐더러 전달하는 의미가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출판계도 곽 대변인의 ‘훔쳤다’는 발언에 대해 과한 해석으로 보는 분위기다. 상식적으로 조국이 책을 내면서, 기존 제목을 차용해 얻을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으로, 법 관련 책 제목에 많이 인용되는데 ‘눈’과 ‘눈물’의 의미는 상이하다는 게 출판계 공론이다.

출판사 궁리도 책 출간 당시 ‘디케의 눈’ 제목에 대해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오랫동안 법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하지만 두건으로 가린 눈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법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서점에는 ‘디케의 칼’, ‘디케의 심장’, ‘디케의 저울’, ‘전쟁의 디케’, ‘흔들리는 디케의 저울’ 등 디케를 차용한 책 제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조국 전 장관의 책은 제목을 잘 정해야만 팔리는 책이 아니라 ‘저자가 조국’이라는 점이 마케팅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를 지지하는 뜨거운 팬심에 ‘베스트셀러’가 보장된 책이라는 얘기다. 김 평론가는 “일반적으로 추천사는 책 출간 전 원고를 받아 읽고 쓴다”며 “추천사를 쓸 당시 책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설사 책 제목이 정해진 뒤 추천사를 썼다 하더라도 1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책 제목을 반드시 외우고 있어야만 한다는 가정 역시 과하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조국 전 장관 신작의 화제성을 틈타 금 전 의원 쪽에서 신당 홍보를 위한 노이즈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각에선 출판사의 대응이 아쉽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슷한 제목을 뽑았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는 반론이다.

지난 3월에는 똑같은 제목의 책이 출간돼 새 책을 전량 회수한 사례가 있었다. 이때는 책 제목이 정확히 일치했다. 메디치미디어에서 펴냈던 ‘99%를 위한 경제학’이 그것이다. 2016년 생각의 힘에서 먼저 출간한 책 제목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배본 후 뒤늦게 알고 사과문을 공지, ‘불평등에 맞서는 반주류 경제학’이라는 새 제목으로 재출간했다.

2016년 생각의힘에서 펴낸 ‘99%를 위한 경제학’(왼쪽) 이후 같은 제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메디치미디어에서 전량 회수했다.
편집자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목 짓는 게 제일 중요하고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본문과 숱한 참고문헌을 참조해 복수의 제목안을 도출하고, 유사 경쟁 도서를 검토한 뒤 책의 포지셔닝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제목의 여러 안은 편집자가 제시하지만,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참여한다. 그만큼 제목은 책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요소로 막판까지 고심한다.

출판계에 따르면 근 3~4년 전까지만 해도 광고카피처럼 참신한 문장형, 대화형 제목이 유행이었다. 솔직한 우울증 상담 에세이로 공감을 얻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출판 흔)는 백세희 작가의 첫 책이자, 독립출판물로 소위 대박이 난 책이다. ‘떡볶이’와 ‘죽고 싶다’는 강렬한 모순의 제목으로 5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지난해엔 ‘~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카피 책들이 여럿 출간됐다. ‘주식하는 마음’, ‘정치하는 마음’, ‘여성, 경찰하는 마음’ 등이 있다.

왼쪽부터 무려 57자 제목을 단 정지돈 작가의 연작소설집, 백세희 작가의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공포소설 여름기담 순한맛, 매운맛(사진=작가정신·출판 흔·읻다 제공).
최근엔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제목들이 눈에 띈다. 제목만 무려 57자인 정지돈 작가의 연작소설집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작가정신)이다. 연작작품 중 긴 제목의 단편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올여름을 겨냥해 나온 공포소설 ‘여름기담’(읻다)은 무서운 정도의 수위를 나눠 ‘빨간맛’, ‘순한맛’ 2권으로 출간한 경우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후마니타스), 아예 책 표지를 숨긴 ‘복면소설’도 나온 적 있다. 저자를 숨기고 익명으로 책을 내는 실험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성공적이진 않았다. 장편소설 ‘김 대리가 죽었대’는 책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경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작 에세이 ‘디케의 눈물’(사진=다산북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