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코리아] 구중궁궐 속 박 대통령, 비선과 수첩만 찾다 인재
by피용익 기자
2017.01.01 17:40:58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초기부터 ‘수첩 인사’가 논란이 되더니 결국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을 맞았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지난 4년 간 국민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불통 인사’에서부터 측근의 자리를 챙겨주는 ‘낙하산 인사’가 횡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꼬리를 물고 있다. 이같은 인사 전횡의 중심에는 비선 실세로 꼽히는 최순실이 있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 크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 100일 동안 단행한 인사 중 무려 14명이 낙마한 것은 ‘인재’(人災)의 신호탄이었다. 당선인 시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재산문제 등 도덕성 논란을 빚은 끝에 스스로 물러났고, 조각 과정에서 무려 5명의 장ㆍ차관급 후보가 줄줄이 낙마했다.
박 대통령이 삼고초려해 중용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재산문제 등 각종 의혹을 끝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는 성접대 의혹을 받았고,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탈세 의혹에 낙마했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는 주식백지신탁 문제가 논란이 됐다.
‘박근혜 1호 인사’였던 윤창중 전 대변인도 빼놓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 대변인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순방 기간 터진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박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힌 후 물러났다.
박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인사위원회에서도 조금 더 다면적으로 철저하게 검증을 하고 제도적으로 보완을 하겠다”며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후에도 불통 인사는 계속됐다.
박 대통령 집권 2년차인 2014년 8월에는 관광 분야 경력이 전혀 없는 코미디언 쟈니윤(본명 윤종승)이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됐다. 쟈니윤은 2007년 2월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교민 사회를 결집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쟈니윤의 관광공사 감사 임명을 두고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이같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공공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119곳의 낙하산 인사는 임원 1186명 가운데 215명으로 18.1%를 차지했다.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는 더 심각하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금융공공기관과 공공기관이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 27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현직 임원 255명 가운데 97명(38%)가 ‘관피아’(관료)와 ‘정피아’(정치인) 출신이었다.
관료와 정치인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낙하산 인사가 일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컸다. 홍기택 전 중앙대 교수를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홍기택은 30년 간 교수로 재직하다 2012년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을 거쳐 산업은행 회장에 발탁됐다. 금융 관련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홍씨가 박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이고, 부인 전성빈 교수가 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는 소문도 돌았다. 홍씨는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실책을 두고 책임론을 야기하면서 국책은행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기택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에 선출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부가 단수 추천한 결과였다. 산은 회장 자리를 놓고도 자격 논란을 빚은 인물을 국제금융기구 부총재에 추천한 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홍 씨는 산업은행 회장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권단의 4조2000억원 지원 과정에서 직무 태만의 책임자로 지목되자 4개월 만에 돌연 AIIB에 휴직계를 내고 잠적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민간 기업의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2013년 말 손경식 CJ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재계에선 CJ가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영화 ‘변호인’의 제작에 참여한 것이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는 이밖에도 포스코나 KT 같은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의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등은 이번 정부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탄핵까지 가게 된 것은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국정에 개입시켜 국가를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근혜정부에 비선 라인이 있다는 얘기는 정권 초반부터 있었다. 2014년에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보도됐다. 정윤회는 최순실의 전 남편이다. ‘십상시’ ‘7인회’ ‘만만회’ ‘문고리 3인방’ ‘8선녀’ 등에 대한 소문도 공공연하게 퍼졌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 가운데 정 전비서관은 구속됐다.
공직자의 인사 검증과 대통령 주변 인물에 대한 감찰의 책임을 지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모는 최순실과 골프를 함께 치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 전 수석이 비선 라인을 통제하지 못한 것은 이같은 배경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 실책
2013년 2~3월, 재미 기업인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미국 국익 대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자진 사퇴
2013년 5월. 윤창중 대변인, 방미 도중 여성 인턴 성추행 혐의로 전격 경질
2013년 10~12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청와대의 압력으로 부회장직 사퇴하고 이후 도미
2014년 5월, 코미디언 자니윤,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자진 사퇴
2016년 5~6월,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진 휴직 및 잠적